이대익기자

[충청매일 이대익 기자] 정치 현수막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거리 곳곳에 걸린 자극적 문구와 정쟁형 슬로건은 이미 시민들에게 피로를 넘어 불쾌감을 안겨주는 존재가 됐다. 혐오 표현과 비방성 문구가 난무하면서 정치 혐오와 편가르기가 확산되는 악순환도 반복되고 있다. 단순한 미관 문제를 넘어 공공 공간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균열을 키우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이광희 국회의원(청주 서원구)의 결단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지역구 내 자신의 모든 정치 현수막을 스스로 철거하고 ‘정치 현수막 없는 청정 서원구’를 선언했다. 정치인에게 현수막은 오랫동안 가장 손쉬운 홍보 수단이었고, 지역 곳곳에 메시지를 노출시키는 일종의 관행처럼 자리 잡아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 비방과 혐오 조장이라는 부정적 관행이 고착화됐고, 시민들의 신뢰는 점점 멀어져 왔다. 이 의원의 자진 철거는 바로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자기 반성과도 같다. 정치가 먼저 내려놓을 때 변화는 비로소 시작된다는 메시지다.

거리에서 가장 먼저 불편을 겪어온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더하고 있다. 청주의 시민단체 ‘공정한세상’은 18일 정치권을 향해 "정당·정치인의 거리 현수막을 전면 금지하라"고 요구했다. 이 단체는 정치 현수막이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돼 갈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광희 의원의 자진 철거에 환영을 표했다. 그러면서 다른 정당 지역위원장들도 동참해 서원구를 전국 최초의 ‘무(無)현수막 정치구’로 만들자고 촉구했다. 아울러 여당인 민주당이 정치인 현수막 전면 금지를 위한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제도적 개선도 함께 요청했다. 정치 현수막 문제는 이미 대통령까지 옥외물 관리 체계 개선을 언급할 만큼 국가적 이슈로 확대된 상태다. 법·제도 논의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과제는 정치권 스스로 불필요한 관행을 내려놓을 용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제도는 실천을 따라가지 못한다. 변화는 결국 ‘정치가 감수하는 불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청주 서원구에서 시작된 이번 흐름이 충북 전역, 나아가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정치권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시민들은 더 이상 공격적 문구와 시각적 소음 속에 살기를 원치 않는다. 정당 간 경쟁은 정책과 비전으로 이루어져야지, 거리 현수막의 양과 크기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정치가 시민에게 불편을 주던 시대는 끝나야 한다. 현수막을 내리는 일은 작지만, 정치 신뢰를 다시 세우는 데 필요한 가장 값진 첫걸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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