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맑은고을시민행동 회장

 

[ 충청매일 ] 지난 달 제19회 세종대왕과 초정약수 축제가 끝난 뒤 최근 초정을 다시 찾았다. 귓바퀴를 때리던 음악소리며 배부른 발길도 멈추게 하는 맛난 음식들, 그리고 길 양쪽에 늘어선 천막 사이로 개미 줄처럼 이어졌던 사람들이 연상됐다. 올해는 때 아닌 가을장마와 겹쳐 지난해보다 방문객이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초정축제는 청주의 대표적인 문화축제임은 분명한 것 같다.

 마침 평일인데도 일본 관광객 20여명이 초정행궁 마당에서 가이드의 안내 설명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한국인 가이드는 주로 초정약수의 특징과 세종대왕의 두 차례 방문 사실, 그리고 초정행궁의 주요 시설 등에 대해 20분 정도 간단히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한양에서 400여리나 떨어진 이곳 초정을 왜 찾았는지, 당시 조정의 상황이나 시대적인 상황은 어땠는지, 세종은 초정에서 신병치료 외에 무엇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초정행궁 문화 해설사에게 물어 보니 축제 후 거의 매일 30여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있다고 했다.

 그때 축제 마지막 날 대한민국 한글학의 대가 김슬옹 박사는 강연회 말미에 초정을 한글역사마을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박사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조선왕조실록에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해 언급된 지역이 바로 초정이며, 창제 후 보급과 확산을 위해 일종의 시범사업을 실시한 곳이 또한 초정이기 때문에 초정만이 정당성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김 박사의 제안에 공감하는 지역 인사들이 얼마 전 뜻 있는 모임을 가졌다. 훈민정음 초정포럼 회장, 한글서체 연구 서예가, 훈민정음 저자 현직 교장, 훈민정음 전공 교수, 기자출신의 한국어 어문법 권위자, 한글바람 시민운동 주창자 등 나름 한글과 초정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칭 한글역사마을 추진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한글역사마을 사업은 청주시를 훈민정음 특별시로 규정하고 초정의 세종행궁을 훈민정음 창제의 본산지로 삼아 초정을 한글 체험과 보급의 중심지로 조성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근거해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배우고 체험하는 것을 비롯 한글을 제대로 알고 즐겨 쓰고 널리 알리는 근거지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사실 한글역사마을 사업은 시기적으로 한참 뒤처진 느낌이 없지 않다. 이미 세종시의 한글문화도시 사업이나 경기도 여주시의 한글도시 사업 등에 비해 정작 훈민정음 관련 조선왕조실록에 유일하게 거론된 청주에는 아직 이렇다 할 연계사업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수백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조성했으나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초정행궁이나 인근 치유마을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연중 상설 운영되는 한글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한글이 한류의 첨병으로서 기능을 하고 한글이 세계어로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청주 초정은 한글의 성지로서 다른 지역이 갖지 못하는 엄청난 문화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내로라하는 관광지도 없고 외지 방문객 유입 요소도 빈약한 청주의 처지에서 훈민정음을  소재로 하는 초정의 명소화는 문화나 지역경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노다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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