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충청매일
2023.01.04 19:24
얼마 전 조문(弔問) 때문에 택시를 한나절 대절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외모나 언행면에서 범상치 않아 보였다. 조문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스스럼없이 터놓고 살아온 날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그는 공고를 다닐 때 배관, 전기, 용접 등 자격을 취득하고, 졸업 후 회사생활 10여 년간 한 뒤,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철공소를 차렸다. 성실한 탓에 신용을 얻게되어 일감은 몰려들고 직원을 늘리는 등 사업이 날로 번창하였다.집안 어른의 소개로 친척 하나를 고용하여 수금하는 업무를 맡겼더니 거래처마다 칭찬이 자자했다. 그래서 경리일체는 그에게 맡기
-
충청매일
2022.12.15 09:30
[충청매일] 화장실은 국가 사회의 ‘문화척도’라고 한다. 중국학교에서 5년간 근무하다가 귀국하여 고속도로휴게소의 화장실에 들를 때마다 필자는 “대한민국 만세!”라고 쾌재를 부른다. 세계 어디를 가 봐도 이만한 휴식 공간을 없을 것이다. 필자가 어릴 적만 해도 화장실을 측간(廁間)이라고 불렀지만, 사찰에서는 ‘근심 걱정거리를 해결하는 곳’이라 하여 해우소(解憂所)라고 한다.호롱불 하나로 밤을 밝히던 시절, 어느 사찰에서 어두운 밤중에 스님 하나가 자다일어나 해우소를 급히 달려가다가 뭔가 물컹한 것을 밟아서 ‘쭈루루!’ 미끄러져 넘어
-
충청매일
2022.11.23 17:26
24절기로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지만 ‘동래불사동(冬來不似冬)’이랄까, 겨울이 와도 겨울날씨 같지 않다. 예전 같으면 11월에 감을 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지난 주말에도 영동 고향집에 가서 감을 땄다. 시골에는 젊은이가 없어서 감을 딸 사람이 없다.이제는 땡감도 물러서 거의 다 홍시가 되었다. 그래도 하나씩 정성껏 그릇에 담아 도시에 있는 친지들에게 선물로 나눠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란 말이 있다. 카톡에 ‘땡감으로 된 홍시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라며 ‘감사 메
-
충청매일
2022.10.12 18:07
잇몸이 헐거나 관절이나 뼈마디가 쑤시고 아프면 몸에 큰 이상이 있다는 신호로 알아차려야 한다.2017년 8월 중국의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여름방학을 기하여 일시 귀국했을 때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도 마시는 등 몸을 마구 굴렸던 어느 날 저녁 자정을 넘기면서 체온이 40도를 육박하는 등 사경을 헤매면서 응급실로 실려가 보름 동안 입원하였다. 그 바람에 중국학교도 9월 중순에야 겨우 출근할 수 있었다.지난달에 그와 같은 징후가 나타나기에 가까운 병원을 찾아가 미리 대비했다. ‘코로나 검사’부터 했지만 결과는 음성으로 나타났다
-
충청매일
2022.09.21 16:18
아버지는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庚戌國恥) 이듬해인 1911년 궁벽한 산골 마을에 가난한 농사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홉 살에 양친을 여의고, 열여덟 살에 육십 리 떨어진 타향으로 머슴살이 갔다. 스물여섯이 돼서야 열아홉 살 된 어머니를 맞이함으로써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굴뱅이 밭에 목화농사를 지었다. 솜처럼 부푼 가슴으로 어머니는 석유등잔에 불을 밝혀 동짓달 기나긴 밤이 지새는 줄 몰랐단다. 한 올 한 올이 쌓여 한 치 두 치가 되고, 한 치 두 치가 모여 한 자(尺) 두 자가 되더니, 한 자 두 자가 모여 한 필(匹)이 되었
-
충청매일
2022.08.31 16:45
지난 8월25일부터 나흘 동안 ‘2022영동포도축제’가 ‘레인보힐링관광단지’에서 열렸다. 축제장을 찾는 사람들마다 ‘와∼!’하는 감탄사가 그칠 줄 몰랐다. 새로이 조성된 넓은 축제장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규모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매우 훌륭한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국악, 와인, 포도’의 고장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시원한 물줄기와 조화를 이룬 것도 매우 인상적이었다.축제기간 중 20여만명이 행사장을 찾았고, 농특산품 판매수익도 20여억원 올리는 등 지역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필자의 고향 ‘탑선리’엔 폐교된
-
충청매일
2022.08.10 16:35
우리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문화와 풍속을 만나게 된다. 여행을 통하여 또 다른 나, 미처 몰랐던 나의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뉴질랜드 관문인 ‘오클랜드’시의 한적한 공원 모퉁이에 1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소녀 몇 명이 바이올린 연주하고 있었다. 꽃바구니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여학생의 앙증맞은 글씨로 ‘연주를 소개하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이번 방학기간 중 외국으로 연주하러 가는데 항공료를 우리가 마련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성금으로 외국연주를 마치면 어른이 되어 이 사회를 위해 공헌하겠습니다.’란
-
충청매일
2022.07.20 17:01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 둘이서 교실에서 엉겨 붙어 싸우고 있었다. 이를 목격한 담임교사(여교사)가 싸움을 말리니까 느닷없이 돌아서더니 말리는 담임에게 달려들어 폭행을 가하는 바람에 부상을 당해 출근도 못했다고 한다. 부상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가 여교사의 권위와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필자는 5년간 중국 절강성의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4천명이나 되는 대규모 학교인데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무엇보다도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필자가 근무한 5년 동안 폭력사건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더구나 학생이 교사에게 폭행을
-
충청매일
2022.06.29 17:18
누구나 인생의 최초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때가 1950년 7월 중순이니까 내 생후 3년6개월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매년 칠월만 되면 타임머신을 타고 내 인생 최초기억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호롱불’과 ‘돼지새끼들’이다.6·25 전쟁이 일어나자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이끌고 동네 뒷산 골짜기에 굴을 파고 피신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아버지는 괭이로 굴속의 벽을 파서 ‘호롱불’을 밝혔다. 지금도 가끔 석유 등잔 호롱불에 밝게 비춘 아버지의 얼굴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그 무렵 우리 집은 송아지만한 큰 암퇘지를 길렀는데, 새끼를 열세 마리
-
충청매일
2022.06.08 16:39
산다는 것은 만남이요, 여행이라고 한다. 코로나 사태가 풀리니까,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서 좋고, 여행도 훌쩍 떠날 수 있어서 좋가. 이제 사람 살맛이 날 것 같다. 밤만 되면 불야성을 이루는 식당가를 보기만 해도 신바람이 난다.얼마 전 아내의 여고동창생 부부가 영동 고향집엘 찾아 왔다. 우리 부부는 ‘흙수저’라면, 그들 부부는 ‘금수저’라고 하겠다. 남편은 정계에 진출하여 국회의원 선거를 여덟 번이나 치렀는데, 두 번 떨어지고 여섯 번 당선 되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시절에는 국회의장을 역임하는 등 정계에
-
충청매일
2022.05.18 17:53
50여 년 전, 강원도 험준한 산길을 버스 하나가 가고 있었다. ‘부르릉!’ 버스가 힘겨운 듯 소리를 내며 가파른 고갯길에 접어들려고 할 즈음, “운전수 양반 잠깐!”이라는 고함소리가 버스를 멈추게 한다. 나이가 지긋한 노스님이었다. “아니 스님!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요?!”라며 젊은 시자가 의아해 한다. “잔소리 말고 내리라면 내리라니까!”라며 스님이 호통을 친다.차에서 내린 둘은 산골의 민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야 이놈아 경치가 얼마나 좋으냐!” 이튿날 버스를 타려고 할 때, 어제 그 버스가 고개를 넘다가 추락하여 많은 사
-
충청매일
2022.04.27 17:30
눈 먼 아버지를 위하여 자기의 한 몸을 기꺼이 임당수에 던진 효녀 심청이나, 임진란 때 조국을 구하기 위해 백의종군(白衣從軍)했던 충무공 이순신! 이들을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것은 그들의 행적이 범인(凡人)으로선 실천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실행하기가 어려운 것을 능히 실천하는 것을 ‘난행능행(難行能行)’이라고 한다.작년과 올해 이태 사이에 필자와는 막역(莫逆)한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다. 필자보다 나이가 아래인 친구를 보낼 때는 더욱 안쓰럽다. 지난주에도 ‘난행능행(難行能行)’을 실천한 친구 하나를 보내야 했
-
충청매일
2022.04.06 17:49
그날은 피곤하여 6시 반에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탑선리 골짜기의 찬바람을 가르며 천천히 차를 몰아 영동 체육공원에 도착하니, 테니스 코트에는 이미 꽉 차서 내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짝 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되어 다른 회원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발길을 돌리자니 20리 길을 달려서 온 게 억울하고 부아가 터졌다. ‘혹시 오늘 하루 운수가 사나운 게 아닐까?’란 생각과 함께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이 생각이 났다.‘오늘 하루는 나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마누라를 뿌리치고 인력거를 끌고 나온 김첨지! 손님이 없어
-
충청매일
2022.03.16 16:44
우리가 성공하려면 ‘운(運), 둔(鈍), 근(根),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즉 성공하려면 운이 좋아야하고, 둔(鈍)해야 하고, 바탕(根 뿌리)이 좋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운’이다. 여기서 말하는 운이란 우연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필연의 운을 말한다.즉 운이 좋으려면 필연의 조건으로 복덕(福德)을 닦아야 한다. 복(福)이 있으려면 공덕(功德)을 지어야 한다. 공덕 중 가장 큰 공덕은 남에게 베풀고 남을 돕는 것이다. 운이 좋으려면 선행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다. ‘둔(鈍)’이란 외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흔들림
-
충청매일
2022.02.23 17:03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요 평론가였던 ‘보르헤스’는 환상적 사실주의에 기반(基盤)한 놀라운 상상력으로 20세기 후반의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시간의 미로를 더듬어 보니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당시 나는 중국의 학교에서 근무했던 관계로 8월이면 귀국했다가 9월이면 출국해야 했다. 그런데 출국 직전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한 바람에 2주 정도 늦게 출국하게 되었고, 그게 전화위복(?) 되어, 당초에는 9월 중순 막내조카 결혼에는 참석지 못할 형편이었지만, 가까스로 참석하고 출국할 수 있게 되었다. “형님
-
충청매일
2022.02.02 19:03
[충청매일] 신년도 다이어리를 한권 사서 표지를 넘기니 ‘버킷리스트(?)’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듣긴 한 것 같은데 선뜻 생각이 나질 않아서 네이버에 들어가 뜻을 알아보니 ‘내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친구들이 하나 둘 저세상으로 떠나는 것 보니, ‘버킷리스트’란 단어가 내게도 절실하게 다가왔다. 임인년(壬寅年)에는 오래된 앨범을 ‘타임머신’으로 삼아 과거로 떠나는 여행을 위하여, ‘오래된 사진첩’을 정리하기로 하였다.70년대 영동여고 체육교사로, 옥천여고 국어교사로 근무했던 시절이 주마등같이 펼쳐진
-
충청매일
2022.01.12 19:08
틈틈이 탑선리 고향집에서 아랫마을 예전리까지 왕복 십리 길을 산책한다. 지난 일요일에도 그럴 작정으로 집을 나섰다. 동구 밖을 지나니 ‘굴뱅이’라는 골짜기로 가는 산길이 보였다. 그곳에는 조상의 넋이 깃든 선산이 있다. 문득 새해맞이 부모님과 조상님들을 참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렸다. 고갯마루를 헐떡거리며 올라서니 제일 먼저 부모님 산소가 눈에 들어온다.부모님 참배를 마치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불꽃같은 정열로 삶을 불태우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혼신을 다하다가 지난 시월 세상을 뜬 ‘순지’의 묘를 찾았다. 학창시절 그녀
-
충청매일
2021.12.28 19:48
해마다 12월이면 교수들이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발표된다. 올해는 다른 해 보다 늦게 발표되었는데 아마 고민들을 많이 한 모양이다.올해는 코로나19 상황을 비롯하여 네 글자의 사자성어로 함축적으로 나타내기가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민 끝에 교수신문을 통하여 발표한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이다.전국의 대학교수 8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14표(29.2%)를 얻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되었다. 그 뒤를 이어 인곤마핍(人困馬乏)과 이전투구(泥田鬪狗)가 각각 2위와 3위로 선정되었다.묘서동처(猫鼠同
-
충청매일
2021.12.01 19:06
“차 좀 바꾸세요. 선생님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중국학교에서 5년 근무하는 사이 내차는 폐기처분 당하고, 귀국하여 딸이 끌던 경차(輕車) ‘모닝’을 몰다보니 농담 반 진담 반 종종 듣는 말이다. 아들딸은 물론 며느리까지도 ‘아버님 걱정’이 태산이란다. 압력(?)에 못 이겨 ‘그랜저’를 구입하였다.그런데 전자자동화라서 오히려 운전이 서투르고 겁이 났다. 대전의 아들집에 일주일 맡겨 놓았다가 지난 토요일에야 겨우 용기를 내어 몰았다. 대전역으로 가서 서울서 내려오는 친척을 태우고 결혼식장까지 가는데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났다. 막내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