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차 좀 바꾸세요. 선생님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중국학교에서 5년 근무하는 사이 내차는 폐기처분 당하고, 귀국하여 딸이 끌던 경차(輕車) ‘모닝’을 몰다보니 농담 반 진담 반 종종 듣는 말이다. 아들딸은 물론 며느리까지도 ‘아버님 걱정’이 태산이란다. 압력(?)에 못 이겨 ‘그랜저’를 구입하였다.

그런데 전자자동화라서 오히려 운전이 서투르고 겁이 났다. 대전의 아들집에 일주일 맡겨 놓았다가 지난 토요일에야 겨우 용기를 내어 몰았다. 대전역으로 가서 서울서 내려오는 친척을 태우고 결혼식장까지 가는데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났다. 막내 동생은 ‘고사(告祀)는 꼭 지내야 되요’라고 충언한다.

그날 저녁 탑선리 고향집 마당에다 ‘그랜저’를 모셔놓고, 흰 실타래, 시루떡, 북어 한 마리, 막걸리 한 잔 따라 놓고, 아내와 난 큰 절로 삼배(三拜) 올렸다. 내 생애에 마지막 차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쿨하였다.

“이제 넌 우리부부와 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부부가 이승의 인연이 다할 때까지 우리부부의 분신이 되어, 우리부부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어주기 바란다. ‘성 안내는 그 얼굴 참다운 얼굴이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말과 같이, 너와 함께하는 네 차안에서만은 서로가 사랑하고 존경하고 찬양함으로써 웃음꽃이 만발하는 ‘화합의 장’이 되기 바란다.” 축원문 낭독과 소지(燒紙)하였다. 문득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모닝’이 눈에 들어 왔다.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모닝’에게도 막걸리 따라주며 큰 절을 하였다.

“벌써 15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정말 고맙다. 딸의 천안교육청 취직기념으로 너를 선물했는데 그녀는 배필을 만나 안성에서 신혼을 시작하더니, 병점과 동탄으로 이사하는 사이, 승기(손자)와 승원이(손녀)가 태어나는 기쁨을 함께 하였구나. 재작년 귀국함으로써 인연이 닿아 청주와 영동을 오가며 우리부부의 수족(手足)이 되어 주었구나. 황토방 만들 때는 황토를, 군불 때는 화목을, 모래를 실어 나르는 등 너의 뒷좌석은 군말 없이 만능 짐꾼이 되어 주었지. 혹사시켜 미안하다. 방학때만 되면 손자들 셋과 우리부부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구나. 너와의 인연은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며 우리부부는 네 생이 끝날 때까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중국에 있을 때 담벼락에서 ‘애인자(愛人者)는 인항애지(人恒愛之)하고, 경인자(敬人者)는 인항애지(人恒敬之)라’란 글귀가 들어왔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항상 공경을 받는다.’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와 일맥상통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도 마찬가지다. 다량소비 시대에 물건이 수단화 되어가는 세태가 안타깝다.

액운을 방지하고, 행운을 기원한다는 고사(告祀)! 고사의 참뜻도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이 아닐까? 하늘을 공경하는 사람은 사람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는 사람은 물건도 공경한다. 물질과 의식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물질도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 보는 것이 ‘양자역학’이다.

‘양자역학’의 이론에 따른 이번 새 차 구입 고사(告祀)를 통하여 ‘경물자(敬物者)는 물항경지(物恒敬之)라- 물건을 공경하는 사람은 물건으로부터 공경을 받고, 물건을 사랑하는 자는 물건으로 사랑을 받는다.’는 경물(敬物)의 지혜를 깨닫게 되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