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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2 18:45
정월 대보름을 맞아서 몇 년 만에 묵은 나물과 오곡밥을 준비했다.평소 반조리 식품을 애용하던 내가 이날만은 반조리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맛을 보이기로 했다. 잡곡을 섞어 놓은 쌀을 준비하고 취나물, 호박나물, 말린 고구마 줄기, 가지나물, 깻잎 순을 불리고 삶고 지지고 볶고 무치다 보니 들기름 한 병이 바닥이 날 즈음 저녁이 되었다.지난해 결혼한 딸과 사위를 불렀다. 장모의 정성이 가득한 밥상이 되었다. 모두가 맛있게 식사하니 올 한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애쓴 보람이 있는 것 같다.대보름을 잘 모르던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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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9 15:51
계절의 시계가 제자리를 찾아 겨울에서 멈췄다. 오늘도 짧은 해는 마음이 급한지 벌써 서녘 하늘에 가 있다. 겨울은 정리, 차분, 고요, 겸손이라는 어감으로 다가 온다.소한이 지난 주말 오후, 근교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길을 찾았다. 도열 해 있는 나무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 놓았다. 명징한 푸른 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시원하게 솟구쳐 뻗어 오른 나뭇가지는 지난 계절의 찬란했던 시간을 안고 의연하게 서 있다.나무 앞에 서니 문득, 유년 시절, 고무 판화에 그렸던 나무가 생각난다. 조각칼에 손을 베여가며 앙상한 나무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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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1 17:18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해맞이 영상이 하루에도 서너 개씩 붉은 해를 띄운다. 붉은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잠깐이지만 내 작은 소망도 덩달아 떠 오른다. 정초가 되면 마음을 정리하며 지난 한 해 동안 마음속 달항아리를 비운다.새해 아침, 다시 목표를 정하여 달항아리에 담을 준비를 한다. 우선 원초적인 삶의 일부를 담아본다.다이어트, 하루에 30분씩 운동하기, 당뇨에 좋은 음식 챙기기, 너무 통속적인 것만 나열하니 부끄러워진다. 올해에 꼭 하고 싶은 것은 세번째 수필집을 출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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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8 18:31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며칠이 지나면 새해를 맞이한다. 영어에서 1월(January)은 ‘야누스의 달’을 뜻한다.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문을 지키는 신으로 앞뒤가 다른 두 얼굴을 가졌다. 한쪽 얼굴은 살아온 한해를 되돌아보고, 다른 한쪽은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이다. 야누스는 시작의 신이라는 직함에 걸맞게 새해의 문을 지키며 액운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어 본다.올해도 대내외적으로 늘 불안한 한해였다. 세상의 악재 속에서도 시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새해에는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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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4 16:20
다슬깃국 한 그릇을 앞에 두고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투병을 시작한 지 어언 일 년, 코로나로 면회도 어려웠던 시기에는 오로지 가족만이 그녀를 가까이 차지했다. 밤과 낮을 구별하지 않고 찾아드는 고통은 그녀의 삶을 연장하는 혹독한 대가다. 그녀에게 지난 일 년의 삶은 다른 이의 십 년 무게와 같았다.그녀가 먹을 만한 음식을 장만하여 그녀의 대문 앞에 놓고 가기를 몇 번, 오늘도 다슬깃국을 끓여 몇 숟갈 먹이고 나오는 길이다.그녀를 두고 무거운 마음을 털어낼 겸 산성으로 향했다. 등산화가 아닌 낡은 운동화가 조금은 미끄러웠지만,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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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17:24
올해도 김장을 하기 전에 동치미를 담궜다. 일주일 지나 뚜껑을 열어보니 발효 거품이 생기면서 잘 숙성이 되어 농익은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하룻밤 냉장시킨 동치미를 한 모금 마시니 입안은 청량하고 온몸이 짜릿해져 온다. 톡 쏘는 맛과 아삭한 무에서 눈 내리는 겨울을 재촉하는 맛이 난다.동치미의 맛은 깊은 맛과 시원한 맛으로 두 가지이다. 삭힌 고추의 칼칼한 맛이 식욕을 돋우고 약간 달짝지근하면서도 시원함은 체증을 해결해 준다. 어느 음식이나 잘 어울리는 동치미는 특별한 맛이다. 단지 소금물과 무와 몇 가지 재료가 항아리 속에서 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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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3 15:31
구절초가 만개하는 가을! 영평사가 구절초에 묻혀있다. 이 계절, 소박하고도 청초한 모습으로 피어나 가을바람에 가녀린 몸을 맡긴 채 하늘거리는 꽃은 더 있다. 쑥부쟁이, 벌개미취, 해국, 들국화다. 보는 이의 눈을 아리게 하는 꽃들이다. 모두가 깨끗한 에델바이스를 닮았다. 오늘처럼 시시때때로 일곱 음계를 타듯 바람이 부는 날에는 저 산등성이를 넘어 ‘에델바이스'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폰 대령의 감미로운 노래 뒤에는 나치를 피해 알프스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비장함과 절박함으로 점철되어 심금을 울렸던 노래이다. 절간 진입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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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5 16:58
지난주에 00문학회 수필 세미나에서 토론자로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강사로 모신 유한근 교수의 “수필과 인간미”라는 주제는 시작부터 그 열기가 뜨거웠다. 이 시간을 통하여 ‘좋은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를 아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수필은 자신의 고백이며, 자신의 체험과 내면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다.좋은 수필은 자기 체험과 사색이 상상력을 통하여 독자를 감동하게 해야한다. 감동이 없는 글은 죽은 나무의 심과도 같다고 했다.아리스토텔레스는≪수사학≫에서 인간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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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8 17:58
여름 휴가길에 도착한 주문진 전통시장은 동해바다의 짭쪼름한 맛과 비릿한 냄새로 가득했다. 좌판 위에 갖가지 수산물이 윤기를 머금고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게와 킹크랩이었다. 우리 식구는 틈을 비집고 틈실한 대게 다섯마리를 주문했다.찜솥에 들어간 대게를 기다리며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고 있노라니 휴가와는 먼 세상에 와 있음을 느낀다. 20여분이 지나자 드디어 갓 쪄내 온 대게가 식탁 위에 푸짐하게 놓였다. 다리 하나를 잘라 속살을 입에 넣으니 달콤한 맛이 짜릿하게 전율을 일으켰다. ‘이 맛에 다들 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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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31 19:11
이른 아침 풋풋한 공기를 가로지르며 국도를 달렸다. 시간 반을 달리니 차창 밖으로 조령산의 울울창창한 푸른 산맥이 끝 간데없다. 백두대간 중심의 마루금이며 신선암봉의 멋진 조망은 감탄의 연속이었다.습기를 잔뜩 머금은 산길을 지나 수옥폭포를 찾아가는 길은 주차장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바로 만날 수 있었다. 20여m 낭떠러지 3단 절벽을 내려치는 수옥폭포는 맑은 물빛만큼이나 청량한 물소리가 마음에 쌓인 묵은 생각과 근심을 한꺼번에 씻겨주었다.폭포 앞 언덕 위에 팔각정자가 늘어진 적송 아래 제법 운치가 있다. 이 팔각정은 17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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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7 16:32
지난주 일요일, 큰 오라버니 칠순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이 모였다. 오라버니는 2남5녀 중 세번째로 장남이다.여든이 된 큰 언니와 일흔일곱이 된 둘째 언니는 건강상 불참하였고, 둘째 오빠 내외는 오미크론에 재감염이 되어 참석하지 못했다.큰 오빠는 아들 두 명을 두었고 큰아들이 결혼하여 딸을 낳았다. 예약된 방에 들어서니 ‘김00 아버님, 박00 어머님의 장남 김00 님의 고희연’이라는 현수막이 한쪽 벽면에 커다랗게 걸려있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름을 보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토목을 전공한 오라버니는 평생을 건설 현장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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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17:01
고삐 풀린 물가에 미국은 결국 ‘자이언트 스텝'을 꺼냈다.미국의 금리 인상 용어로서 기준금리가 0.25% 오르면 베이비 스텝, 0.5% 오르면 빅 스텝, 0.75% 오르면 자이언트 스텝이라고 말한다.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 유가 상승이 미국의 물가상승을 압박하면서 금리 인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국 연방 공개시장 위원회(FOMC)는 지난 15일(현지시각) 성명을 내고 “위원회는 연방 기금 금리 목표 범위를 1.5~1.75%까지 인상하기로 결정 했다”라고 밝혔다.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로 최대폭의 기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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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2 18:21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산과 들은 유록빛으로 산란하고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사무실 화단에 활짝 핀 모란 한 포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며칠 전부터 꽃봉오리에서 5월의 시그널이 들려오더니 마침내 꼬투리를 벙긋했다.첫날에는 비밀스러운 임을 만나듯 수줍게 한 떨기만 피우더니 다음날에는 고운임 만난듯이 발그레한 얼굴로 가지 끝동마다 꽃 빛을 안겨주었다.이삼일이 지나자 7년이 넘은 나무에서 수십 송이의 연분홍 꽃봉오리가 한꺼번에 벙글었다.풍성한 엄마의 치맛자락 같은 모란꽃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함지박만 해지면서 웃음꽃도 함지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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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8 19:02
천상 낙원이 지상으로 내려앉는다면 이런 풍경일 것이다.수목원에서는 걷는 내내 달달한 향이 났다. 이곳에는 학창 때 거닐던 교정도 있었고, 영화에서나 보았던 파라다이스가 존재하고 있었다.이곳은 천리포 수목원,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푸른 눈을 가진 민 병갈 박사는 1962년에 부지를 매입하고 척박한 땅에 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18만평에 1만7천분류군의 전 세계적인 수목을 식재하여 봄에는 목련, 만병초, 튤립, 여름이면 수국, 가시연꽃, 상사화, 장미, 가을이 오면 화살나무, 억새, 단풍나무, 눈이 오면 호랑가시나무, 동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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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4 17:03
내게 설렘을 주는 것이 있다면 무슨 일인가를 시작해보는 일이다. 새로운 일은 나를 세상과 이어주는 창(窓)이자 교각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든, 아니든 마음에 충동이 일어나면 한 번쯤은 도전해볼 일이다.일과 공부, 여행과 운동을 용기 내어 한 발 나아가 보는 그, 해 봄. 그것이 성공으로 가건, 새로운 시련으로 다가오건 맞서야만 진정한 나를 만나게 된다. 무엇을 해 본다는 건 그 행동만으로 값어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5년 전, 몸 담고 있는 문학회에서 회장을 맡으라는 제의를 받았다. 갑작스런 제안에 나는 극구 사양했다.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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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2022.04.10 16:02
바야흐로 흠뻑 무르익은 봄이다. 이맘때면 도로변 가로수에는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아름다운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벚꽃길로 이어지는 무심천에서부터 정하동 미호천변을 지나 북이면 신대리까지 40여분 동안 벚꽃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한다. 며칠 동안만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놓칠세라 퇴근길에도 이 꽃길로 들어선다.마침 라디오에서 장범준의 ‘벚꽃 엔딩’ 노래도 덩달아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대에게 벚꽃을 보러 가자고 똑똑 문을 두드리면 그대가 나올 것 같은 멜로디가 기분 좋다. ‘벚꽃 엔딩’ 노래만 들려와도 지난날의 즐거운 순간들이 떠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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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2022.03.27 17:19
[충청매일] 뉘엿뉘엿,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 무렵이면 미호천을 향하여 핸들을 돌린다. 매일 만나는 길이지만 하늘빛은 언제나 다르다. 오늘은 뭉게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 카메라 화각 맞추기에 그만이다.이른 봄 천변은 목가적이다. 수십 리 하천을 따라 형성된 논과 밭에서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먹음직스러운 딸기가 주렁주렁 열리고, 가지마다 방울토마토가 탱글탱글 익어가고 있다. 뚝방 길로 이어지는 이 길은 인도가 따로 없어 걷기에 불편하지만 군데군데 쉼터가 있어 가끔 차를 세우고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망중한에 빠지기도 한다. 서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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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2022.03.13 16:44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경칩이 다가오면 지상의 각종 생명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오늘도 남도로부터 꽃 소식이 들려온다.이때가 되면 종종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며 쉼표 하나 그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고 싶어진다. 그곳에 가면 나 자신의 진정한 삶을 변화시킬 강력한 그 무엇이 있을 것만 같아서이다.‘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이 숙제처럼 다가온다.그렇게 영혼의 떨림을 따라온 남도의 통도사는 봄을 알리는 홍매화가 살짝 피어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통도사 홍매화, 수줍은 듯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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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2022.02.27 19:05
[충청매일] 한 달 전 광주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일어난 외벽 붕괴 사고로 인해 시공사는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를 한순간에 추락시키고 말았다. 이 사고로 인하여 그 회사는 저평가되어 코스피 최악의 PER를 보여주며 초대형 악재로 이어졌다. 안전과 함께 추락한 이 기업은 신용을 다시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모를 일이다.추락의 사전적 의미는 높은 곳에서 떨어짐이다.사람에게서도 추락의 모습을 볼 수 있다.마냥 빛날 줄 만 알았던 삶에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큰 사고나 중병이 찾아와 함정에 빠진 이들이다. 이는 사막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