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올해도 김장을 하기 전에 동치미를 담궜다. 일주일 지나 뚜껑을 열어보니 발효 거품이 생기면서 잘 숙성이 되어 농익은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하룻밤 냉장시킨 동치미를 한 모금 마시니 입안은 청량하고 온몸이 짜릿해져 온다. 톡 쏘는 맛과 아삭한 무에서 눈 내리는 겨울을 재촉하는 맛이 난다.

동치미의 맛은 깊은 맛과 시원한 맛으로 두 가지이다. 삭힌 고추의 칼칼한 맛이 식욕을 돋우고 약간 달짝지근하면서도 시원함은 체증을 해결해 준다. 어느 음식이나 잘 어울리는 동치미는 특별한 맛이다. 단지 소금물과 무와 몇 가지 재료가 항아리 속에서 스미고 배어서 새로운 맛으로 태어나는 과정에 적당한 온도와 발효되는 시간은 자연이 해결해 준다.

지난 토요일 딸아이가 결혼식을 올렸다. 아장아장 걷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새 삶에 들어섰다.

밥도 제대로 못 하는 딸이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앞선다. 늘 “엄마 이 음식은 어떻게 해야 이렇게 맛있는 거야?” 하면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정작 배울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다행히 곁에 살게 되었으니 당분간은 내 손길이 필요할 것 같다.

결혼이란 수많은 재료가 어우러져 익히고 발효되어 새로운 맛을 내는 동치미처럼 20점, 30점짜리 둘이 만나 100점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라 한다.

처음 풋내나던 채소가 깊은 맛으로 익어가는 과정은 결혼생활도 이와 닮았다. 맹물이었던 무(無)맛이 감칠맛 나는 동치미가 되려면 서로 어우러지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해야 새로운 맛으로 탄생한다.

딸은 이제부터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며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이지만, 그만큼 행복하고 감동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모난 돌이 몽돌이 되기까지 거친 물길에 쓸리고 부딪히는 고난의 시간을 슬기롭게 잘 해결할 것으로 믿는다.

결혼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부부가 생각이 다른 점이다. 그럴 때마다 상대를 탓하지 말고 부부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도 있음을 인정하며 배려가 필요하다.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서로 존중하고, 믿음이 두터워진다. 딸아이와 사위가 의견을 잘 절충하고 타협하며 살아가길 늘 설교하듯 당부하고 있다.

식이 끝나갈 무렵 신부 측 대표 인사말에 하객들과 부부 앞에서 당부의 말을 전했다.

‘오늘, 두 사람은 인생의 정원에 나무 한 그루 심었습니다. 이 묘목이 노거수가 될 때까지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도록 물도 주고 약도 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소나기가 내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태풍이 찾아와 가지가 꺾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도 좌절하지 말고 정성을 다하여 기르다 보면 어느 날, 아름답고 화려한 꽃도 피고 탐스럽고 보기 좋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부모는 이 나무가 뿌리가 잘 내릴 때까지 곁에서 햇볕도 비추고, 좋은 공기도 불어 넣고, 뜨거울 때는 그늘이 되어 주고 추울 때는 이불이 되어 보호할 것입니다. 현실을 너무 두려워 말고,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열심히 그리고 아름답게 잘 살아가기를 바랍니다.’라며 축사를 끝냈다.

엄마의 염원이 다 들어있는 이 말을 둘은 잘 들었을 것이라 믿는다.

늘, 이 말을 되새기며 동치미에 고구마가 최고의 궁합이듯 딸과 사위도 환상의 궁합으로 지워진 삶을 잘 극복하며 살아가길 손 모아 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