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여름 휴가길에 도착한 주문진 전통시장은 동해바다의 짭쪼름한 맛과 비릿한 냄새로 가득했다. 좌판 위에 갖가지 수산물이 윤기를 머금고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게와 킹크랩이었다. 우리 식구는 틈을 비집고 틈실한 대게 다섯마리를 주문했다.

찜솥에 들어간 대게를 기다리며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고 있노라니 휴가와는 먼 세상에 와 있음을 느낀다. 20여분이 지나자 드디어 갓 쪄내 온 대게가 식탁 위에 푸짐하게 놓였다. 다리 하나를 잘라 속살을 입에 넣으니 달콤한 맛이 짜릿하게 전율을 일으켰다. ‘이 맛에 다들 여길 오는구나,’ 입맛을 당기는 대게와 동해 바다의 산물을 온전히 담은 물회 한 그릇이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풀렸다.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주문진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도로 가에는 빨간 해당화가 새초롬하게 꽃을 피워 환영해 주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The Beach Boys의 Surfin USA 노랫소리가 피서지의 전주곡으로 들려왔다. 이 울림은 몸을 바다로 이끌었다.

무더위를 피해 도착한 하조대 해수욕장에는 수많은 피서객이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피서객의 검은 피부와 바다를 누비며 물살을 가르는 쾌속정 보트가 여름 해변의 낭만을 끌어 올렸다.

연신 들려오는 안전원의 파열된 호각소리만 없었다면 최고의 휴가지라 생각이 들었다. 파열음은 언제 어디서나 고통을 가져다준다. 30도를 넘는 불볕 더위가 자연스레 해수욕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의 일을 모두 잊고 그저 누리고 즐기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며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 채 몇 년 만의 짭쪼롬한 휴식이 실감 나게 고마웠다. 일상의 여백에 자연의 향기가 스며드니 마음도 그윽해져 온다.

더위를 씻겨준 주문진 해수욕장을 벗어나 소돌항 향호지를 물길을 따라 둘레길 걷기를 시작했다. 호수와 바다는 그저 한 가닥 모래톱으로 나누어져 있을 뿐인데, 향호를 보는 것과 바로 옆 동해를 보는 느낌은 너무도 다르다. 물의 색깔, 물의 흔들림, 물의 냄새조차 구별이 된다. 마음을 맑게 비워내는 호수는 마음의 짐을 내려 놓게 하고 쉬고 싶을 만큼 한껏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다.

다음날은 속초항을 지나 영랑호로 발길을 옮겼다.

영랑호는 신라 화랑 영랑의 이름이다. 금강산에서 수련을 하고 서라벌로 내려가던 길에 이곳 풍경에 빠져서 돌아가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멀리 속초 등대를 뒤로 하고 영랑호 산책로에 들어선 첫 느낌은 동양화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이 호수와 어울리니 한 폭의 수묵화이다. 물과 묵으로만 만들어지는 수묵화 농담의 매력적이었다. 호수에 잠긴 설악의 능선과 울산바위 모습이 최고의 피사체로 비친다. 2시간을 걸어야 한 바퀴를 다 돌지만 가보지 않아도 그 끝을 알 수 있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속초 중앙시장에 들러 닭강정을 사는 일은 또 하나의 추억을 기록했다. 강원도는 가는 곳마다 각기 다른 맛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항구의 맛이 건강한 맛이라면 보이지 않는 항구의 맛은 줄을 서서라도 맛보고 싶은 추억 맛이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