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6학년은 뉴스 만들기 수업을 하는 모양이다. 국어와 사회교과를 통합하여 학교 안팎의 이슈를 발굴하여 취재 보도하는 모양인 듯하다. 학생들이 인터뷰하러 갈 예정이니 준비하라는 담임교사의 연락이 왔고 이후 학생 5인조가 교무실로 왔다.편집과 앵커는 팔짱을 끼고 이 상황을 관망했다. 뉴스 주제는 ‘학생들의 교내 엘리베이터 사용에 대한 인식조사’였고 교감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시작되었다.학교의 시설은 구성원이 함께 사용하는 것이니 당연히 학생들도 엘리베이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더니, 순간 5인조는 자기들끼리 눈
이태원 참사는 침몰해 있던 기억과 공포를 인양했다. 벚꽃 날리는 4월에 한겨울 얼음바다 속에 있는 듯 오한이 들고,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죄인처럼 숨이 막히던 길고 무력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일상의 믿음은 깨지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공격으로 날카롭게 날이 서 있던 시절이 상기되었다. 두 참사는 마치 같은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10월 30일 월요일. 교내 학생자치회에서 준비한 핼로윈 행사는 취소되었다. 올해 핼로윈은 자치회에서 처음 운영하는 것으로 등굣길에 학생들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나눠주겠다고 공지가 되었다
강력사건이 발생했다. 월요일 아침, 학교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후문에서 등교지원을 하고 계시던 배움터지킴이샘과 시설 주무관님이 나에게 달려오셨다.두 분이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에 뛰어오는 일이라면 보통 일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 혹시 아침부터 학교폭력이 발생했나? 그렇다면 생활부장이 뛰어올 텐데? 학생이 다쳤나? 그건 안전부장이 뛰어올 일인데? 그럼 학부모 관련 일인가? 등 짧은 순간 여러 경우의 수를 예측했다.연세 많은 지킴이샘은 들고 있던 경광봉으로 내 옆 감나무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교감샘 큰일났어. 아니 어
학생수의 변화는 우리 학교에는 학급수 감축으로, 큰길 건너 학교에는 학급수 증가로 영향을 주었다. 청주 인구가 풍선처럼 이쪽저쪽에서 일시적으로 부풀었다 가라앉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학교가 구도심에 있는지, 신도심에 있는지에 따라 고민의 종류와 내용은 다르지만 (학령)인구의 절대적인 감소는 모든 학교에 고루 위협적이다.줄어든 학생수는 교육의 방식에도 질적 변화를 가져와 맞춤형교육을 넘어 개별화교육을 필요케 하고 코로나와 태풍 같은 재해는 필요시 언제든 수업을 원격으로 전환할 수 있게 했다.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변모하는 학
몇 달 전 교육비 지원 학생 선발을 위한 회의를 했다. 중위소득 80% 이하 가정은 학부모가 직접 지자체에 신청해 교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회의는 교육비 지원 신청을 못했거나 갑작스러운 가정사로 어려운 처지가 된 학생들을 자체 발굴하려는 취지로 소집됐다. 담임교사는 수업, 상담, 관찰을 통해 기록한 학생 추천서를 제출했고 위원장인 나를 포함한 10여명의 학생복지위원회 소속 교사들은 이를 검토했다. 부모의 실직, 오래된 빈곤, 한부모 가정, 학생의 투병 등 불운은 다양하고 다채롭게 뒤엉켜 있었다.위원들은 사연에 비해 지원금이 턱없
개학을 하는 첫 날 거대한 트럭이 교문을 들어왔다. 학기 초에 들어오는 교과서 수거 트럭이다. 교과서는 교재의 하나일 뿐이고, 교육과정 재구성 수업을 많이 한다 해도 교과서는 여전히 학교와 수업은 필수적이다. 코로나 절정기에는 교과서를 드라이브 쓰루로 주니, 워킹 쓰루를 하니, 가정으로 배달을 해서라도 학생들의 손에서 나름 대접을 받았는데 몇 달 만에 아무렇게나 포개져 트럭으로 던져졌다. 학생들은 자신이 어깨로 모시고 다니고 양팔로 들고 날랐던 무게만큼 교과서의 쓸모 있음과 없음의 차이를 몸소 체험했을까 궁금해졌다.이사 다닐 때마다
단톡방에 몇 달 만에 번개 공지가 올라왔다. 타지에 살고 있는 친구가 오랜만에 고향에 온다는 소식과 더불어 번개가 소집되었다. 17명 동기 중에 고향보다 타향에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음에도 번개는 대부분 고향에서 이루어진다.대학 시절에는 방학에 집중해서 만나다가 직장인이 된 후에는 명절 중심으로 만났고 결혼 시기에는 전국 여기저기로 몰려다니며 만났다. 나 또한 결혼 전에 남편을 이 모임에 소개했다. 이 모임의 구성원, 역사, 성격 등에 대해 사전 교육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녀 구분이 어려운 중2 쉬는 시간 같은 혼성 그룹의 발랄함에
페추니아가 사라졌다고 눈 밝은 아이들 몇몇이 와서 물어왔다.붉은 단심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뿜어내었던 페추니아가 졸업한 텅 빈 화단은 식구 많은 가족이 서둘러 이사 나간 전세방처럼 휑하였다.며칠 후 화단에는 어린 국화들이 갓 입학한 신입생 같은 이름표를 달고 의기양양하게 심어져 있었다.그 동안 페추니아의 한살이를 도왔던 여러 손길들은 어린 국화에게로 옮겨가 그들이 노랗게 철드는 과정을 채울 것이다. 마치 학교 교육처럼 말이다.아침이면 1리터짜리 생수병을 책처럼 옆구리에 끼고 한 줄로 선생님을 따라가는 학생들이 향하는 곳은
[충청매일] 아버지가 데려온 녀석은 태어난 지 20일 정도 된 강아지였다. 없는 살림에 줄줄이 사탕 삼남매 키우기도 힘든 데 강아지까지 데려왔다고 불평하는 엄마와 달리 삼남매는 이산가족 상봉한 듯 감격하였다.아버지는 첫째이자 모범생인 오빠에게 강아지 이름을 지어보라고 했고 이제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전교 1등 오빠는 강아지 이름을 ‘Bright(영리한·빛난)’로 정했다. 1980년대 골목을 누비던 ‘누렁이, 메리, 케리, 쫑’이라고 불리는 동네 개들 틈에서 브라이트라는 이름은 튀어도 많이 튀었지만 부모님은 오빠의 결정에 뿌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