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기원전 1050년, 주왕(紂王)은 상(商)나라 마지막 임금이다. 부친에게 나라를 물려받았을 때는 한창 젊은 나이였다. 이때만 해도 체력적으로 힘이 세고 정신적으로도 총명하여 매사에 판단이 정상적이었다. 군주가 허물이 없으니 신하들이 감히 함부로 불의를 저지르지 못했다. 심지어 작은 일 하나도 군주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이렇게 신하들이 바짝 엎드리니 주왕은 점점 자만심이 커졌다. 자신이 결정이 항상 옳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나랏일은 주왕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때가 많았다. 특히 자신과 왕실에 유리한 정책이면 그것이 나라를 위한 것이라 여겨 적극적으로 실행하도록 했다. 왕실의 번영은 곧 세금 징수였다. 갑자기 많은 세금을 걷자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사방에서 원성이 많았다. 하지만 젊은 군주는 이를 알지 못했다. 그저 많이 걷힌 세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골똘했다.

하루는 주왕의 식탁에 이전에 보지 못했던 귀한 상아 젓가락이 올라와 있었다. 그걸 본 신하 기자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급히 간언하였다.

“왕실이 청렴하고 검소해야 나라가 잘되고 백성들이 편안한 법입니다. 군주께서 상아 젓가락을 쓰기 시작하면 그에 맞는 식기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제 곧 사기그릇은 천하게 여겨 옥그릇으로 전부 바꿀 것이고, 옥그릇을 쓰게 되면 전국 곳곳에 귀하고 값진 기물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귀한 것에 걸맞게 수레와 말 그리고 의복이며 침구까지 궁궐은 사치로 휩싸일 것입니다. 궁궐 살림이 사치하게 되면 그때는 진정시킬 수가 없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더욱 가난하게 되고 그러면 백성들은 살기 어려워 나라를 떠나고 말 것입니다. 백성이 없으면 그때는 세금을 더 걷고자 해도 걷을 곳이 없으니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겠습니까. 하오니 식탁에서만은 귀한 기물을 멀리하시옵소서.”

기자는 왕실의 자손이고 주왕에게는 작은아버지였다. 하지만 주왕은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일축했다.

“고작 상아 젓가락 하나 쓴다고 어찌 나라가 망한단 말이오. 그리고 나는 사치할 정도로 판단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니 그리 걱정하지 마시오.”

하지만 이후 주왕은 자신에게 아부하는 신하들의 꼬임에 넘어가 술과 여색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건장하고 힘이 센 군주가 주색에 빠지자 1년이 못 되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왕실 회의에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나중에는 아예 신하들에게 나랏일을 일임하고 자신은 밤낮으로 연회에만 빠져 지냈다.

신하 기자가 이를 알고 달려가 주왕에게 간언했으나 도리어 옥에 갇히고 말았다.

얼마 후 주(周)나라가 쳐들어오자 주왕은 도망친다는 것이 술에 취해 불길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다. 후에 기자가 폐허가 된 상나라의 도읍 은(殷)을 지나면서 짧은 시를 남겼다.

“주왕, 이 어리석은 자식아. 왜 그때 내가 한 말을 허투루 들은 것이냐!”

견미지저(見微知著)란 작은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앞날을 안다는 뜻이다. 소주를 마시다가 문득 진로의 창업주 아들은 왜 그 많은 재산을 지키지 못하고 해외에서 쓸쓸히 죽었을까. 그래서 술맛이 씁쓸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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