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그 녀석 참 명물일세”라는 칭찬의 말이 있었다. 요즘은 사람에게는 잘 사용하지 않는 ‘명물’이라는 단어는 ‘잘한다’, ‘뛰어나다’, ‘우수하다’ 등의 표현과는 다른 독특한 어감과 맛이 있다. 그리고 명물로 불리는 사람에게는 왠지 질투나 시기가 아니라 칭찬과 격려와 지지의 이미지가 떠 오른다. 우리 집안의 명물, 우리 고장의 명물 등의 표현과 같이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그 사람이나 사물에 집중되어 있고, 경쟁이나 순위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런 이미지 때문에 지금의 경쟁사회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청주시 낭성면에 자리잡고 있는 다다예술학교는 우리 지역의 ‘명물’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안교육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 다다자연미술학교로 시작했다(1993년).

이 학교 교장선생님은 “기존 제도권 교육의 문제점과 제도권 교육을 통해 육성되는 인간상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지나치게 경쟁과 성취를 강조하며, 경쟁을 통해 성취에 순응하는 태도를 가르칩니다. 성취는 순위로 정리되고, 아이들은 순위로 정리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자기 자신을 그 안에 가두게 되죠.”라고 말한다. 필자에게 찌릿~ 하며 와닿은 말은 ‘그 안에 자기 자신으르 가둔다’라는 표현이었다. 요즘 아이들의 성취는 중·고등학교가 아니라 이미 초등학교 또는 유치원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고, 그 성취에 따라 진학을 한다. 성취를 이룬 몇 명의 어린이를 제외하고는 그 정리된 순위에 자신을 가둔 채, 즉 ‘나는 경쟁에서 뒤져있고, 그래서 부모나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틀 속에 살게 된다. 이 사회적 틀은 꽤 오랫동안 자기 스스로를 정의하고 평가한다. 그리고 어릴 때 만들어진 틀 속에 갇혀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간다. 이 부류의 사람 중 일부는 성공이나 성취의 문턱에서 매번 포기되어지고 만다.

이러한 성공 공포증은 대부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무서운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다다예술학교를 방문하고서 ‘이 아이들은 적어도 우리 사회가 기획한 틀 속에 갇혀서 살지는 않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우리 사회가 공식적으로, 겉으로 주장하는 이념과는 다르게, 어떤 성과나 명문대 졸업장을 최우선의 가치에 둔다면, 지금의 교육체계와 명문고를 지향하는 사회체계에 적어도 회의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겉과 속 모두 인간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다면, 그렇다고 말은 하지만, 적어도 다다예술학교에 대한 평가와 지원은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한 명의 장애 학생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열 명의 비장애인을 포기하더라고 그 한 명을 지켜라”라고 말씀하신 선친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다다예술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나면서 명물 학교에 명물 선생님이구나 생각했다. 이 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은 신체는 장애를 가지고 살지만, 마음만은 비장애인들보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다. 병든 사회에서 병들지 않는 사람들을 키워내는 다다예술학교가 진정한 우리 사회의 명물이다. 겉껍데기만 번듯한 명문학교 보다 속 알맹이가 행복한 명물학교가 더욱 많아지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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