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자치통감(資治通鑑)은 북송(北宋)무렵에 사마광이 편찬한 이전 시대에 대한 역사서이다. 기원전 403년 주(周)나라 위열왕부터 서기 960년 후주(後周)의 세종까지인 전체 1362년간을 1년 단위로 편찬하였다. 자치란 정치에 자료가 되고 이전 왕조의 흥망을 귀감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오늘은 그중에서 법(法)에 관한 대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장강(長江)은 대륙 중앙을 횡단하는 전체 길이 6천300km에 달하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옛날에 그 장강 깊은 곳에 신령한 용이 살고 있었다. 지금껏 용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어렴풋이 용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여럿 있었다. 그 실체를 말할 것 같으면 아홉 가지 동물들을 섞어놓은 것과 비슷했다. 머리는 낙타며 뿔은 사슴이고 눈은 토끼이며 귀는 소이고 몸통은 뱀이며 배는 큰 조개고 비늘은 잉어며 발톱은 매이고 발은 호랑이와 닮았다. 몸에 전체 비늘은 81개이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턱 밑에는 구슬이 있으며, 목 아래에는 거꾸로 된 비늘 역린이 있다. 날개는 없지만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코와 입으로 불이나 독을 내뿜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용의 이름을 법(法)이라 하였다. 가끔 천둥이 치면 멀리 천리 밖에서도 그 울음소리가 들려 사람들은 무서워서 감히 장강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용은 물 밖으로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용에게 다친 사람이나 죽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 무렵 강남에 기름진 땅이 있었다. 그곳에 귤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해마다 귤은 풍성하고 달콤하게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 귤나무 부근에는 커다란 웅덩이가 있었다. 그 안에 기(?)라는 커다란 물뱀이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귤을 따먹으려 웅덩이를 건너면 기가 나와 사람을 해쳤다. 그러니 사람들은 기가 두려워 도무지 귤을 따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기는 자신보다 커다랗고 무서운 동물인 곰이나 호랑이가 지나가면 모습을 드러내기는커녕 도리어 깊이 숨어버렸다. 그러다가 사람이나 토끼가 지나가면 갑자기 달려들어 공격했다. 장강의 그 큰 용에게는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하찮은 물뱀에게 사람들이 그리도 많이 다치는 것일까? 용은 자신을 건드리지 않으면 결코 아무도 해치지 않았다. 그러니 수 백 년 동안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물뱀 기는 혹시라도 사람들이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 웅덩이에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공격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물뱀이 두려워 귤을 따러 갈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물뱀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물뱀은 항상 숨어 있다가 몰래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이는 자신의 당당함을 보여주었다가는 사람들이 가소롭게 여길 것을 또한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법어지언(法語之言)이란 올바른 말로 백성을 이끈다는 뜻이다. 법의 본래 실체는 바른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법이 불의를 위해 쓰이고 있다. 이는 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법을 쓰는 사람의 잘못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법을 구부려 사람을 공격하는 그 간사한 행동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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