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직장인들에게 점심식사 시간은 가장 기다려지면서도 갈등의 시간이다. 오늘은 누구랑 뭘 먹을까? 급한대로 식당을 먼저 정하고 메뉴는 가서 고른다. 식당에서 가장 많이 선택받는 메뉴는 아마도 ‘아무거나’일 것이다. 뭐 먹을까? 아무거나. 어디로 놀러갈까? 아무데나. 무슨 영화 볼까? 글쎄, 아무거나. 늘 아무거나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거나 좋아하는 영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냥 상대방과 함께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어쩌면 목적을 달성한 것이기에 아무거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는 내가 어떤 것을 주장하면 상대방이 거기에 맞춰줄 것이기 때문에 나 보다는 상대방의 뜻을 따라준다는 배려의 마음일 지도 모른다. 상대가 어려운 사이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런 지나친 배려 또는 소극적인 의사표현을 자주 할 경우에는 대인관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몇 년 전에 TV방송과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탔던 서울여대 모 교수의 ‘놀던 여자가 잘 되는 이유’라는 강연이 있었다. 며칠 전 우연히 그 영상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강연의 요지는 이렇다. 결혼 전 잘 놀던 여자, 여러 남자를 사귀어 봤던 여자가 결혼 후에도 잘 산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잘 산다는 것은 돈이 많거나 좋은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더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어릴 적에 이것저것 경험하고, 놀아보고, 사람도 사귀어보면서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그 터득은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기 때문에 더 행복하게 산다는 뜻밖의 얘기를 한다. 상대방이 아니라 나를 잘 아는 것이 결혼생활을 더 행복하게 하는데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 교수는 말한다. 좋은 인상을 주는 것, 즉 말 할 때의 표정이나 어투, 그리고 상대의 말에 긍정적이고 확실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를 더 오래, 좋게 지속할 수 있게 만든다. 키, 얼굴, 몸매, 목소리 등의 외모는 첫 인상을 좌우하지만 이것은 오래가지 않고, 또 나중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그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 몸짓이 훨씬 더 오래 기억된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 많이 놀고, 여러 사람을 만났던 사람이 나 자신을 더 잘 안다는 것이다. 잘 놀아본 사람은 내가 뭘 해야 좋은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많은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 ‘아무거나’라고 말하지 않고 분명하게 먹고 싶은 것을 말한다. 여행을 가든, 영화를 보던, TV를 보던 의사표현이 분명하다.

중년 이후의 세대는 어려서부터 의사표현이 분명하면 칭찬보다는 꾸지람을 받고 자랐다. 자신이 어떤 메뉴를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를 물어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답하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아무거나’라고 말하는가 보다. 나를 모르면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 나를 모르면 대인관계의 폭이 좁아지고 지속적이지 못하다.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하고, 나 스스로가 나를 받아줄 수 있어야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필자도 올해 중2가 된 까칠한 큰 딸의 불만과 요구사항이 자주 화를 돋우지만 순순히 받아주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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