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순의 the생각해보기] 마음속 마중물
[배명순의 the생각해보기] 마음속 마중물
  • 충청매일
  • 승인 2016.11.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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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연구원 연구위원

남편은 미안했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는 대신 또 퉁명스럽게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말을 내뱉어 버렸다. 그런 남편의 반응에 아내는 원망스럽고 눈물만 나왔다. 자기가 잘못을 하고서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다니. 아내도 후회했다. 조금 더 상냥하게 말할걸, 조금 더 웃어 줄걸 하고 후회하지만 늘 결과는 똑같다. 각기 다른 가정의 이야기이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지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 부부 사이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신혼 시절을 빼고는 상대의 잘못이나 실수를 그냥 넘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신혼 시절에는 배우자의 말과 행동이 잘못이나 실수로 보이지 않거나 크게 생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의견 대립과 서운한 감정이 쌓이면서 그냥 넘어갔던 일들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결혼하더니 남편이, 아내가 변했다고 한다. 남편은 업무의 연장이고 성공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 아내는 아이들과 싸우고 씨름하면서 혼자 눈물 흘리면서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그 스트레스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그리고는 서로의 탓을 하면서 못살겠다고 이혼을 생각한다.

필자도 이러한 과정을 겪었으며, 참다못한 아내가 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아버지학교에 필자를 강제로 등록시켰다. 그 이후로 부부학교를 다녔고 아내는 어머니학교를 수료했다. 무언가를 배우는 학교이다 보니 숙제가 많았다. 그 숙제는 대부분 억지로 시키는 것이 많아서 어색하고 못마땅했다. 신혼이 지난 이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사랑한다는 말하기, 출퇴근 할 때 포옹과 키스하기, 주말에 단 둘이 데이트하기, 10분 동안 말하고 또 들어주기 등이 숙제였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억지로 시키는 숙제 때문에 한 말과 행동인데 순간 웃음이 나고, 얼었던 빗장이 조금 녹는 듯하며, 마음 속 어두운 한 켠에 조그맣게 쭈그리고 앉아있던 미안함과 고마움이 더 커지고 밝아지는 느낌이 든다. 필자는 그 이후로 6년 동안 가정사역 교육을 받았고, 이제는 예전의 필자처럼 방황하고 있는 부부들이 스스로 헤쳐 나올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있다. 아주 드문 경우를 빼고는 대부분의 부부들이 상대방을 탓하거나 자기변명은 잘하는데 정작 하고 싶은 미안하다는 고맙다는 말은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억지로 시킨다. 그것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려주면서 그대로 따라 하라고 시킨다. ‘여보, 어머님과 당신이 다툴 때 내가 당신 편들지 않고 그냥 나가버려서 당신에게 혼자라는 생각을 들게 해서 정말 미안해’라고 말하라고 시키면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그대로 따라한다. 필자가 시킨 말을 남편이 그대로 옮겼을 뿐인데 아내는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에 남편도 따라 운다. 그 순간은 감사와 축복이 넘친다. 필자가 시킨 말은 이미 남편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그걸 못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수 펌프는 그냥 사용하면 물이 올라오지 않는다. 반드시 물을 한 바가지 부어주고 펌프질을 해야만 잠시 후 시원한 물이 솟아난다. 그 한 바가지 물을 ‘마중물’이라고 하는데,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에도 이러한 마음속 마중물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부어주어야 하지만 훈련이 되면 마중물이 없어도 펑펑 잘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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