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성완종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검찰수사가 시작에 불과하지만 국무총리가 68일 만에 낙마를 하는 등 파문은 심상치 않다. 새벽운동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테니스를 치고 해장국을 먹는데 모두들 열변을 토한다. “자살을 하더라도 곱게 할 것이지, 온 나라를 그렇게 시끄럽게 하느냐?”

그의 죽음에 대한 평가도, 진보적 그룹과 보수적 그룹이 극히 상반적이다. 야당을 비롯한 진보적, 비판적인 그룹들은 호재를 만났다는 듯이 ‘현 정부가 썩었다’는 식으로 몰아붙이고, 나이가 지긋한 보수적 안정을 기하는 그룹들은 ‘떳떳하게 밝힐 것이지, 왜 죽어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느냐’는 식으로 그를 호되게 질타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두 가지 본능-에로스와 타나토스-이 있다고 한다. 에로스는 ‘삶의 본능’이며, 타나토스는 ‘죽음의 본능’이라 한다. 보통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을 ‘에로스’라고 한다. 남녀 간의 사랑도 결국은 아이를 낳고 종족을 보존하는 것이니 ‘삶의 본능’이 되는 셈이다.

이와 반대로 절망을 하거나 극한 상황에 처하면 ‘타나토스(죽음의 충동)’가 일어나 파괴와 죽음을 초래한다고 한다.

‘성완종 사건’도 결국은 ‘타나토스’ 성향에 따른 파멸이라고 봐야하겠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과 같이 ‘삶과 죽음의 본능’은 결국에는 하나라고 한다.  삶에 대한 의욕이 강한 사람일수록 타나토스(자살충동)의 성향이 강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성완종’은 삶이 극한적 절망에 처하자,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타나토스’로 분출해 ‘자살’을 선택한 것이겠다.

필자는 이 사건을 보면서 맹구우목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만약 성완종이 ‘맹구우목’의 교훈을 깨달았다면 자살은 없었을 것인데!”라고 아쉬워했다.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 태평양 바다 심해에는 거북이 한마리가 있단다. 그 거북이는 천년에 한번씩 수면위로 올라온다고 한다. 망망대해 넓디넓은 바다에서 널빤지 하나를 만난다.

거북이는 그 판자에 의지하여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바다로 들어간다고 한다. 망망대해에서 널빤지를 만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란다. 인간으로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자살을 하다니!

천재일우의 인연에 의하여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어떻게 살아야 잘 살 수 있을까? 인생이란 얻는 것과 잃는 것으로 얽혀져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명예가 됐건, 지위가 됐건 혹은 친구나 돈, 물건 등 무엇이든지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지금 당장의 눈앞 일만 가지고 손익을 따져서는 안 된다. ‘성완종 사건!’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함으로써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맹구우목과 타나토스! 맹구우목은 삶의 본능인 에로스와 통하고, 타나토스는 죽음의 본능에 속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는 전 생애를 통해서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해야한다. 우리는 무엇이 진정으로 얻는 것이 되고 잃는 것이 되는가! 우리는 열린 눈으로 세상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맹구우목’의 지혜다. ‘맹구우목의 지혜라!’ 심중(心中)에 고이고이 간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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