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유하계(柳下季)는 공자의 친구였다. 그에게는 도척(盜蹠)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그 무렵 도척은 천하의 큰 도적으로 졸개가 만여 명에 이르렀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어 천하 각지를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지나는 길에 재물이나 가축을 보면 즉시 빼앗았고, 부녀자를 보면 함부로 겁탈하였고, 죄 없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 잔인하게 죽이니 그 포악한 명성이 극에 달했다. 도척이 지나가면 그 지역의 현감이나 태수는 성을 굳게 지키고 시비를 피할 정도였다.

 하루는 유하계가 공자에게 하소연 하였다.

“그놈 때문에 정말 창피해서 못 살겠네. 천하의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고 다니니 말일세. 게다가 부모를 돌보기를 하나,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를 하나. 그놈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걱정이라네.”

 그 말을 들은 공자는 불쑥 화가 치밀었다. 천하에 그런 놈이 있다는 것은 인의(仁義)와 도덕(道德)을 가르치는 자신에게 큰 수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게. 걱정 말게. 내가 그놈을 만나서 한 번 설득해보겠네.”

 당시 공자는 천하 각국의 왕과 제후들을 상대로 바른 정치를 설파하는 달변의 천재였다. 그러나 유하계가 펄쩍 뛰며 만류했다.

“그건 자네가 내 아우를 몰라서 하는 말이네. 공연히 큰 코 다치기 전에 그만 두게나.”

 하지만 공자는 유하계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세등등하게 도척을 찾아갔다. 도적의 소굴에 들어와 보니 상황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우선 도척의 엄청난 덩치와 무서운 눈빛에 공자는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공자 선생께서 저를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으음. 흠흠! 내가 찾아온 것은 인의의 도리를 알려주고자 온 것이오.”

 그러자 도척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어디 한 번 말해보시오. 만약 하는 말이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당장에 목을 베어버리겠소.”

 도척이 칼자루에 손을 갖다 대자 공자는 정신이 아득했다. 설득은커녕 오히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였다. 공자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허둥지둥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쳐 나왔다. 굴 밖을 나오다가 두 번이나 넘어졌고, 마차의 고삐를 몇 번이나 놓쳤는지 모른다. 겨우 빠져나오고서야 안도의 한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침 성문에 이르렀을 때 유하계를 만나게 되었다.

“아니, 자네 안색이 왜 그리 안 좋은가? 혹시 도척을 만나고 온 것인가?”

 공자는 하늘을 우러러 깊이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네.”

“그래, 내가 말한 바와 같지 않던가?

“맞네. 나는 이른바 병도 없는데 스스로 뜸질을 한 격이네. 무턱대고 달려가 호랑이를 쓰다듬고 호랑이 수염을 가지고 놀다가 하마터면 호랑이 주둥이를 벗어나지 못할 뻔 했네. 내 평생 이렇게 혼나기는 처음이라네.”

 이는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장자(莊子)가 한 이야기이다.

 무병자구(無病自灸)란 아픈 데도 없는데 스스로 뜸을 놓는다. 즉 공연히 쓸데없는 짓으로 정력을 낭비한다는 의미다. 자기 본분만 지키면 될 것을 공연히 나서서 일을 망치고 망신만 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배움이 없는 자는 말로 설득할 수 없다. 막무가내 살려는 자는 교류할 수 없다. 가난한 자와 싸워서는 아무 이득도 얻을 수 없다.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일에 공연히 나서서 무슨 성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결국 모든 시비나 불의는 자신의 할 일만 하면 자연히 평정되는 것이다. 새해에 다툼이나 화를 멀리하고자 한다면 새겨들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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