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우편집중국장
수필가

 

[ 충청매일  ] 음식을 먹을 때마다 어릴 적 배고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맛있게 먹고, 부모님에 대한 무한감사와 존경심에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부모님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갖은 고생 덕에 오늘 내가 이렇게 잘 먹고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고마워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대부분이 음식을 가려먹는 시대라 부모세대의 보릿고개 시절과 비교 격세지감이 들고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밥상에 자주 오르는 김이나 달걀 등 요즘 자주 먹는 것도, 예전에는  명절이나 제사 때 겨우 하나를 여러 토막으로 잘라 맛보던 음식이어서, 하나하나가 귀하게 여겨지고 이를 못 드신 부모님이 안쓰럽고, 나만 잘 먹는단 생각에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부모님은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하였고, 전쟁을 겪으며 격동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오로지 자식들 배 안 굶기려고 근검절약 정신으로 갖은 고생을 했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기본으로 하면서 아버지께서 우(牛)시장에 다니며 8남매 자식을 기르고 가르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장에 다니는 관계로 농사일을 도맡아 하며, 없는 살림에 자식들 먹이느라 자신은 굶기를 밥 먹듯 일생을 사셨다.

 굶다 보니 변비가 심해 화장실 가는 게 애 낳는 것보다 힘들었단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난다.

 아버지께서는 미원장을 비롯하여 인근인 보은 내북 청천 청주 장을 돌아가며 매일 하루 밤길 몇십 리를 걸었다.

 어릴 때 학교 갈 시간이면 아버지께서 소를 몰고 오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는데 그때 아버지 ‘이 랴’ 소리는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보은장에서 소를 초장에 사면 늦은 밤에 도착하고, 오후에 사게 되면 주막에서 한숨 주무시고 밤중에 출발하여 아침에 집에 왔다.

 아버지의 눈물겨운 고생을 잘 알기에 보은 근무할 때는 예전 우시장을 찾아가 아버지의 흔적을 살피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 시절엔 나라 전체가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기라 대부분 부모가 갖은 고생을 하며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없었으면 오늘의 풍요로운 삶은 상상할 수 없고, 아직도 어렵게 살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원조수혜국에서 최초로 원조공여국이 된 세계 경제 10위권에 진입한 자랑스러운 국가로 다른 나라 부러움의 상징이다.

 나라의 위상이 높아져 재외동포나 해외 나간 관광객이 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원천이 되고 있음은 주지사실이다.

  우리가 이렇게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은, 선대들의 피와 땀방울 덕분으로 그들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고, 이를 기반으로 더욱 잘사는 나라가 되도록 국민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