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충청매일  ] 학생들의 등교 소리와 함께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있다. 6년 가까이 세 자녀와 홈스쿨을 하면서 등교와는 멀리 지냈었는데, 막내가 중학교를 대안학교에 진학하면서 아침 시간이 분주해졌다. 7km 정도의 길지 않은 거리지만 30분가량 걸려 등교시켜 주면서 중·고등 학생들의 등교 모습을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발랄하고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모습에서 아직은 쌀쌀한 아침이지만 마음에는 벌써 봄이 오고 있다. 

 그러면서 저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어른이 되어 자신들 같은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경험하게 될 새로운 세상에 기대와 걱정이 스며들었다. 우리가 경험한 것과 같은 것도 있겠으나, 빠르게 변하고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니 걱정의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기상이변은 인류 역사에서 처음 겪는 일이니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경험을 물려줄 수도 없다.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마을 앞 개울이나 저수지에서의 멱감기, 근처 산에서의 밤 따기와 칡 캐기, 봄철 뜰에서의 냉이와 달래 캐기 등의 경험을 물려줄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자녀들한테 하면, 그걸 왜요? 굳이 그런 경험을 해봐야 하나요? 라는 반응이다. 그런데, 이런 반응은 지금의 청소년뿐만 아니라 젊은 MZ 세대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유명한 전(煎)집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하는데, 냉이전의 냉이를 보고 브로콜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심지어 그들은 MZ 세대도 아니었다.

 음식은 단순히 맛으로만 찾지 않는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음식의 재료가 주는 미각보다는 그 음식과 얽혀있는 추억이 맛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냉이를 먹을 때, 그 특유의 향은 코와 뇌를 자극한다. 그리고 우리를 넓은 논과 밭의 뜰로 안내한다. 그 뜰에는 봄철에 솟아나는 나물들이 가득하다. 이 기억들이 잠시 우리를 감성에 젖게 하는데, 이것이 맛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물론, 우리 자녀들은 야외 뜰에서의 추억과는 다른 추억이 있다. 조명이 화려한 레스토랑이나 유명한 연예인들의 SNS가 떠오를 것이다. 스마트 기기에 익숙해져 버린 젊은 세대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나이 든 사람으로서 지나친 오지랖, 간섭 또는 고루한 감성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자연과 교류하는 경험에 대해서는 그 고루함을 버리기가 어렵다.

 필자의 세대는 자연과 교류하는 경험이 많았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때는 시골이 싫었지만, 50중반이 된 지금은 음식에서조차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맛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것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진짜 세상의 것이기에 더욱 마음이 가는지도 모른다. 점점 더 자연과 멀어지는 시대에서 10년 후,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어른이 된 그때의 세상은 무엇을 추억할지 궁금하다. 

  Not Mars(화성은 됐고)를 외치는 기업이 있다. 기후위기로 더 이상 살기 어려워진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의 이민을 이야기하고 있는 요즘, 화성은 됐고 지구나 잘 지켜서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기업이다. 이 기업의 제품은 생각보다 비싸지만, 요즘 자꾸만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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