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 충청매일] 지난 토요일 대관령과 선자령을 잇는 능선을 타고 왔다. 눈이 많이 와 온 세상이 다 희었다. 폭설로 설악산, 오대산에 오르는 것을 막아 이쪽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도로는 차량으로 긴 행렬을 이루고, 산길도 많은 사람으로 긴 줄을 이루면서 가끔 정체되기도 하였다. 번잡하기는 하였지만, 사람들은 밝은 얼굴로 눈 세상을 만끽하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느꼈을 것이다.

호연지기는 맹자공손추상편에 나오는 말로, ‘사람의 마음에 차 있는 너르고 크고 올바른 기운’,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울 만큼 넓고 커서 어떠한 일에도 굴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당당한 기상을 뜻한다고 한다.

하루가 지난 일요일 아침, 시골집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산 위쪽으로만 눈이 쌓여 마치 흰 모자를 쓴 것처럼 보였다. 산 위와 아래의 온도 차 때문에 산허리에는 긴 안개가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런 산 풍경에 이끌려 다시 상학봉 능선에 올랐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진경(珍景)이었다. 사방에 멀리까지 펼쳐진 봉우리마다 흰 모자를 쓰고, 봉우리들 사이로 자리를 잡은 안개가 신비로운 기운을 자아내고 있었다. 산이 파도처럼 넘실댔다.

넓고 크게 펼쳐진 기운이 그대로 다가왔다. 산과 구름, 바람, 하늘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어떤 거짓과 위선이 끼어들 수 있으랴. 욕심도 부질없다. 자연의 한 조각이면 그만이다. 예부터 호연지기를 기르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면 다시 인간 세상이다. 산에서 내려놓았던 거짓과 위선,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유로, 착한 척하고(위선) 한 티끌이라도 더 재산을 모으려고 한다. 그런데 남이 나를 착하다고 믿어주고 짊어진 재산이 더 무거워지면 행복한가? 그 만족감이 산 위에서 느낀 호연지기와 비교할 수 있을까? 세속의 만족감과 호연지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지혜가 있는 이라면 고민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세속의 편리와 만족감을 다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호연지기와 견주면서 나의 욕심이 분수에 넘치는 게 아닌지 돌아보자는 것이다.

요즘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받은 명품백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는 말을 하고, 김경률 비대위원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와 난잡한 사생활이 프랑스혁명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취지로 말하는 등의 지경에 이르자, 대통령실에서 한 위원장에게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고 한 위원장은 이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비치자, 두 사람은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나, 한 위원장은 대통령에게 90도 폴더인사를 하고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둘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상황을 연출했다. 그런데 화재 현장에서 정작 상인들은 만나지도 않아 두 사람이 봉합쇼를 했다는 비판이 크게 일고 있다.

이들에게 호연지기를 기르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김건희는 그깟명품백에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고, 실수로라도 받았다면 대통령 부부는 깔끔하게 사과하면서 조사도 받겠다고 하였을 것이며, 화재로 전 재산을 날린 상인들의 절절한 아픔을 배경으로 봉합쇼같은 일은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만, 특히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은 호연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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