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 충청매일 ] 최근에 본 드라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고(故) 이선균 주연의 ‘나의 아저씨’다. 나이만 많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따뜻한 드라마였다. ‘기생충’을 비롯해 많은 작품에서 만난 그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었다.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조리 돌림 당하듯 대중의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쪽에 저러다가 나쁜 마음을 먹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는데 걱정이 사실이 되어버렸다.

 사람은 존재 자체로 다중적 역할을 강요받고, 그에 따른 책임 또한 강제 받는다. 그러나 연예인이 공인이며,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잘하는 일이 있다. 선택에 따라 배우도 되고 가수도 된다. 대중에게 인기를 끌면 유명인이 될 뿐이다. 그 과정은 여타 직업보다 치열하고 힘들어서, 정점에 선 사람은 많은 부를 누리고 대중은 그것이 당연히 여긴다. 

 그가 처음 마약을 했다는 의혹이 처음 불거진 이후 2개월 가까운 시간, 언론은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뉴스를 도배했다. 간이시약 검사와 국과수 조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았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유흥업소 실장과의 대화녹음을 생방송으로 국민에게 공개하는 인격살인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수사 정보를 유출하고,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을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목으로 반강제적으로 주입하는 형태를 보였다. 악의적이고 무분별한 기사와 조회 수를 늘리고 관심을 끌려는 유튜브 등 누구도 한 인간이 삶과 그 가족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마약 의혹을 받던 한 가수는, 기자들의 질의 과정에서 웃었다는 이유로 언론의 질타를 받고, 음성판정이 나오자 온몸의 체모를 모두 밀어 조사할 수 없다는 조롱 섞인 보도로 그를 희화화했다. 연예인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는 그의 추락한 이미지는 누가 책임질까? 국민은 관음증 환자가 아니다. 선정적인 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연예인의 사생활 보도가 언론의 본질은 아니다. 일반 국민이 알 수 없는 권력의 부패와 잘못된 행정에 대한 견제 감시를 위한 공익적 기사를 원한다.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예를 들면 얼마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류희림 위원장이 가족과 지인을 통한 집단 민원사주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이 내부 고발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였다. 본질을 외면하고, 공익제보를 위축시키는 이런 형태의 사건에 대해 국민은 알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보도에 있어 사건의 경중과 선후의 결정 과정에 공익이 전제되어야 하는 이유다.

  작년 정부는 한 언론사를 특정해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 국민은 모든 언론사가 탑승을 거부해 부당한 권력에 대해 저항할 것을 기대했지만 헛된 희망에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을 명예훼손 했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당하는 언론사와 기자들을 국민은 안타까워하고 응원한다. 최소한 그들은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기사보다 진정한 국민의 알 권리가 무언가를 아는 언론이며 기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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