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는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론에 대해 “분명히 국가는 없었던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태원 참사 당일 오후 6시34분에 위험하다는 시민의 제보 전화를 묵살한 질타지만, 이는 국가의 굳건한 시스템의 붕괴를 인정하는 대답이다. 총리의 말은 현 정부의 전체적인 국가운영의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상징적인 말이기도 하다.

한 총리나 대통령의 발언인 ‘용산 경찰서가 몰랐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는 말은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에서 남의 일을 지적할 때 하는 말이다. 대통령이나 총리는 국가안전의 총 책임자이며 주체자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식 밖의 일이라며 아랫사람을 지적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고 모든 잘못을 일선 경찰로 돌리겠다는 태도다.

경찰에 대한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그 시간 분명히 국가는 없었다. 총리가 그렇게 인식한다면,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이 일 순위로 책임을 져야 한다. 마치 아랫사람 잘못 인냥 모든 책임을 경찰조직으로 떠넘기려는 발상은 정치적인 임기응변으로 보인다.

국가가 순간 증발해버린 시간에 대해 대통령이 먼저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참사에 대한 대응 미흡을 지적하며 한 총리의 사퇴를 촉구, 압박했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32명이 희생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즉각 사과문을 발표했다. 총리는 사고 날 오후 5시30분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당일 오후 7시에 참사 책임을 물어서 서울시장이 문책성으로 경질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사과문에 ‘저는 대통령으로서 저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죄송스럽다. 이 사고는 일어난 게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현재 대통령은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상식 밖의 일이라며 남의 탓을 하고 있다.

총리가 사퇴하고 서울시장,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은 경질돼야 맞다. 국가가 없었던 끔찍한 상황을 정비해 국정의 전면쇄신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 이태원 참사 수사를 위해 특별수사본부에 500명이 구성됐다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보여주기 위한 수사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이미 결과가 뻔한데, 인력을 총동원해 수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수사하는 동안 지켜보겠다는 명분만 줄 뿐이다.

정부의 총체적인 부실 대응과 책임 회피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 안전의 총 책임자인 대통령의 역할이 전무하다. 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망언과 책임 회피로 참사에 상처받은 국민에게 더 큰 상처를 안기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한남동 대통령 관저가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8일 대통령 내외가 이사를 완료했다.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엄청난 국가 예산을 소모해가며 국방부가 사용하는 건물과 외교부 공관 건물을 대통령 개인 임의로 사용하겠다는 발상은 왕조시대에도 없었던 일이다.

국가는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최상층의 공동체다. 기존의 시스템을 대통령 개인 취향에 따라 임의로 바꿀 수 있는 대통령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국가가 없었다는 총리의 말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국가의 시스템이 사뭇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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