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대표

어미 참새가 두리번거리며 먹이를 부지런히 찾는다. 잠시 후 새끼가 날아온다. 엄마 곁에서 먹이를 기다리나 보다. 어미 새가 드디어 지나가는 곤충을 부리로 잡았다. 그를 마구 흔들어 기절시키더니 어미 새가 새끼 부리에 먹이를 넣어준다. 참새 새끼는 먹이를 먹고 엄마를 향해 다시 입을 쩍쩍 벌린다. 배고프다고 더 달라고 계속 조르는 듯했다. 어미 새는 쉴 새 없이 먹이를 찾는다. 정작 어미 새는 자기의 배고픔은 잊은 듯하다. 엄마의 사랑이다. 애절하다.

은희(가명) 어머니가 울컥하여 눈물을 훔치신다.

“큰 애는 공부도 잘 하고 품성도 좋고 친구 관계도 좋아서, 매사에 걱정이 없는데 둘째 은희는 공부에 관심이 없고, 자유분방하여 자기 멋대로 생활하여 걱정이에요. 이리저리 해 보아도 방법을 모르겠어요”라는 어머니의 하소연에 조언을 드렸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린 나이에는 공부에 관심이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차분한 것도 자유분방한 것도 정상입니다. 각자가 자기의 개성에 맞게 잘 성장할 것입니다. 은희는 행복한 학생이고 틀림없이 잘 성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희에 대한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 말에 은희 어머니는 ‘울컥’하셨다. 은희 어머니의 사랑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기 때문이다. 엄마의 사랑이다. 부럽다.

맹자가 아직 어렸을 때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의 공부와 성공을 위해 3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자식을 최고의 학자로 길러낸 현명한 맹자의 어머니가 아무 생각 없이, 공동묘지나 시장으로 이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현명한 맹모는 맹자가 학문을 닦는 데 앞서 먼저 인생의 죽음에 관해서 공부하고 삶의 엄숙함과 진지함을 알게 하기 위해 묘지를 찾았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한 후 시장으로 이사를 하여서 시장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삶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인생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삶과 죽음의 바른 목적을 알게 하고 그 후에야 비로소 학문에 정진하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맹모삼천지교’의 해석이 어떻든, 우리는 이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과 지혜가 자녀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어머니의 사랑 실현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우리 어머니의 가슴에 자식을 어떻게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녀의 성장에 어머니의 사랑은 꼭 필요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사랑의 방법은 정답이 없다. 다만 몇 가지 방향을 정리한다.

하나, 엄마가 갖고 있는 사고의 틀과 사랑의 방법을 점검하자. ‘이렇게 사는 것이 옳고, 저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라는 틀을 자녀에게 강요하지 말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가 아니고 ‘이렇게 하면 어떨까? 엄마 생각은 이런데 너의 의견은 어때?’로 바꾸어보자. 자녀는 이제 어린애가 아닌 인격의 객체이다.

둘, 결과를 걱정하지 말자. 이렇게 될까 걱정, 저렇게 될까 걱정하는 것을 자제하자. 자녀와 ‘과정과 결과의 경우’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과정의 선택과 결과는 이제 자녀의 몫이라 생각하자.

셋, 자식 잘되라고 말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잘되길 소망한다고 하여 강요가 옳은 방법은 아니다. 진정 잘 되길 소망하면 자녀가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동기와 환경을 제공하고, 그 길을 잘 찾아가도록 이끄는 전략적 사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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