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속리산 법주사 벽암대사비 재조명…임진왜란 당시 승병으로 해전 참여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 벽암대사비(碧巖大師碑)와 봉교비 모습.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 벽암대사비(碧巖大師碑)와 봉교비 모습.

[충청매일 황의택 기자]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충북 보은의 속리산 법주사 벽암대사비(碧巖大師碑)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충북도 유형문화재 71호인 법주사 벽암대사비가 호국과 애민 정신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유적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대한불교조계종 5교구 본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보은의 속리산 법주사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 인근 자연석 암반 위에 세워진 비석 2개이다.

이 두 개의 비석 중 하나는 충북 보은 출신의 조선 중기 대표적인 승병장이자 남한산성 증축에 참여하고,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법주사를 다시 세운 ‘벽암대사’ 관련 비석이다.

다른 하나는 봉교비다.

이 벽암대사비는 조선 현종 5년(1664)에 건립된 비석으로 글씨는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이오가 쓴 것으로 전해진다.

비의 높이는 2.13m, 폭 1.1m, 두께 35㎝ 규모다.

벽암대사(1575~1660)는 보은 출신으로 10세에 출가해 설묵의 제자가 된 인물로 14세에 보정과 그 후 선수의 제자가 돼 스승을 따라 속리산, 덕유산, 가야산, 금강산에서 수도 정진하던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으로 해전에 참여해 왜적을 물리치는데 공적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1624년 조정에서 남한산성을 쌓을 때 ‘팔도도총섭’으로 임명돼 승군을 이끌고 3년 만에 성을 완성시킨 공을 인정받아 인조로부터 ‘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의 직함과 함께 의발(衣鉢)을 하사받았다.

벽암대사는 1646년(인조 24) 가을 속리산 법주사에서 동문인 희언과 은거했다.

홍영의 문화재팀장은 “평생을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고 실천한 큰 어른 벽암대사의 뜻을 한 번쯤 되새겨 보는 호국보훈의 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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