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쏘기 문화 산책] ‘조선의 궁술’ 산 증인 성낙인 3
[활쏘기 문화 산책] ‘조선의 궁술’ 산 증인 성낙인 3
  • 충청매일
  • 승인 2022.05.1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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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2019년 인천 남수정에 편사놀이 구경을 갔다가 남수정의 역사가 담긴 자료를 몇 가지 보았습니다. 90세 넘은 노사가 깨알 같은 붓글씨로 써 내려간 남수정의 역사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활터 대표인 사두의 대수를 어떻게 산정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남수정의 경우, 현재의 사두부터 거꾸로 대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인데, 각 사두가 2년씩 임기를 마쳤다는 전제하에 몇 대 몇 대임을 정했습니다. 이런 사정은 남수정만이 아니라 수많은 활터에서 이런 산정 방식으로 현재의 사두 대수를 정했습니다.

이런 산정 방법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예컨대 1970년대까지 대부분 선출직 사두의 임기가 4년이었고, 1980년대 접어들면서 2년제로 바뀌다가 1990년대로 접어들면 2년제 임기가 거의 자리 잡습니다. 충북궁도협회장의 경우, 임기가 4년이었고, 이달형씨가 회장을 맡았던 1990년 무렵 2년제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1980년대 이전의 사두 임기가 4년이었던 것은, 대통령을 비롯하여 임명직 시절 대부분의 단체장 임기가 4년이었던 것과 비례합니다. 관직의 관행이 활터로 흘러온 것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오늘날의 관행이 된 2년제로 옛 임기를 산정한다면 그것은 큰 착오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정말 많은 활터에서 이런 방식으로 옛날 사두 임기를 산정하여 현재의 사두 대수를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활터의 역사가 너무 오래되어서 생기는 부산물이니, 이걸 기뻐해야 할까요? 슬퍼해야 할까요? 별별 고민을 다 하게 됩니다.

성낙인 옹을 만나서 얘기를 듣다가 황학정의 사정도 이와 비슷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집 접장이 쓴 ‘황학정백년사’를 보면 성문영이 황학정의 5대 사두로 정리되었습니다.

즉 ‘나세환-엄주익-정행렬-김영배-성문영’ 순입니다. 그런데 성 옹의 얘기를 들어보면 고개가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즉 황학정에서 성문영 공의 앞 사두는 정행렬이었다고 합니다. 엄주익에 대해서는 기억이 더욱 또렷해서 그의 손자와 알고 지낸 사이였고, 엄주익은 사두가 아니고 사계장이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성 옹의 유품 중에서 ‘황학정 사계’가 발견되어 이 순서의 오류는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1899년 황학정이 재건될 당시 사계에 의하면 계장은 민영환이었고, 사장(=사두, 사수)은 김세욱이었습니다. 황학정은 사계장과 사두가 동시에 있는 2원 체계(계장+사장)였던 것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사계는 활터를 후원하는 조직입니다. 사계장은 민영환이었지만, 활터를 직접 운영하고 통솔하는 사두는 김세욱이 첫 번째였던 것입니다. 결국 ‘황학정백년사’에서는 사계장과 사두를 혼동하였다는 결론입니다. 엄주익이나 김영배는 사계장이지 사두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러니 황학정의 사두는 ‘김세욱-정행렬-성문영-임창번’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세환, 엄주익, 김영배는 사계장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정행렬이 1924년에 입산하는데, 그 뒤를 성문영이 이어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해에 황학정은 경희궁에서 등과정 터인 현재의 자리로 옮기게 됩니다. 성문영은 3대 사두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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