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석의 흔들의자] 여정(旅情)
[서강석의 흔들의자] 여정(旅情)
  • 충청매일
  • 승인 2022.05.0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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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아내는 설렘으로 들떠있다. 아직 3, 4주나 남았는데 벌써 여행지 날씨를 살피고 틈만 나면 여행 정보를 들척거린다. 일상에서의 일탈도 좋은 듯했고 접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요동치는 듯했다. 종일 함박웃음을 달고 살았다.

아내는 그렇게 감미로운 유채색 행복구름 위에서 둥실둥실 며칠 몇 날을 살았다. 심지어는 내가 아내의 생일을 깜박 잊고 아침 밥상 위에 미역국의 의미를 모른 채 지나갔어도 행복구름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사실은 나도 설레었다.

출발이다. 여행사가 정한 인천공항 만남의 장소에 동기들이 살짝 들뜬 모습으로 모여들었다. 손을 꼭 잡은 부부, 다른 듯 꼭 닮은 모녀, 오십 대 세련된 쌍둥이 자매, 우정의 칠 공주 할머니 모임…….

인솔자와 미팅 후 출국 심사를 거쳐 탑승했고 청주 집에서 출발하여 21시간 후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곧바로 이스탄불 시내 관광을 시작으로 성당, 궁전을 보고 유람선도 탔다. 꽉 찬 일정으로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숙소에 들어왔다. 종일 촉촉하게 내린 봄비와 꽃샘추위 덕에 엄청 추웠다. 긴 여정으로 일행 모두가 지친 빛이 역력했다. 다음날부터 오전 5시에 모닝콜로 눈을 떠 매일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을 버스를 타며 여행을 강행했다. 이틀 후부터 아픈 사람이 나타났다. 어떤 이는 몸살감기 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차멀미와 입에 안 맞는 음식 때문에 몇 끼를 굶는 사람도 있었다. 급기야 장염 때문에 국내선 비행기로 마지막 호텔로 가서 병치레한 부부도 생겼다.

저마다 따로따로 행동했다. 나도 일행들도 각자 본인들의 욕구를 채우기 급급했다. 약속 시간에 늦고 군것질하느라 없어지고 슬그머니 자리다툼 경쟁도 있었다. 짜증과 고생의 강행군이었다. 점점 출발할 때의 설렘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때 한 줄기 빛이 되어 준 것은 칠 공주 할머니 모임이었다. 평균 연령 71세 할머니들이 가는 곳마다 앞장서 나아갔고 식사도 잘 하고 자유 시간 후 집합 시간도 어긴 적이 없다. 가끔은 재치 있는 유머로 지친 분위기를 풀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연륜으로 쌓은 노장의 힘을 과시했다.

인솔자가 가장 우려했던 팀이 오히려 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저녁이면 슈퍼에 들러 술을 사던 가장 씩씩해 보였던 젊은 부부는 오히려 병치레를 했다. 할머니들은 일행에게 폐가 될까 봐 스스로 앞장서며 식사와 건강을 챙겼다. 그 할머니들의 후덕한 인심과 세심한 배려 덕에 잔뜩 경직되어 자기 자신들의 안위만 챙기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음이 풀어지고 욕심도 내려놓았다.

나도 덩달아 그랬다. 정성으로 약을 챙기며 아픈 사람들을 보살피는 사람도 생겼고 열심히 다른 가족들 사진을 찍어 주느라고 바쁜 가족도 생겼다. 버스 안에서는 사탕이며 과자를 서로 나누며 정이 오가기 시작했다. 힘든 여정이지만 점점 따듯하게 느껴지며 즐거움이 움텄다. 서로 돕고 나누는 마음이 달리는 버스 안에 행복한 미소와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우리를 설레게 했던 미지의 세계가 주는 신비로움이 그제야 행복으로 가슴에 들어왔다. 우리 삶의 여정에서도 그와 같다.

많은 사람이 여행에 깊이 매료되고 중독되는 것은 각박한 세상을 벗어나 모든 탐욕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로움과 그에 대한 설렘 때문이라 생각된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행 덕분에 잃었던 봄빛 햇살이 다시 반짝이고 순수한 봄꽃은 싱그럽다. 그들 사이로 행복 가득한 노래가 스민다. 나는 이제 하나씩 내려놓고 어릴 적 설렘 속으로 한발 한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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