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반찬은 셀프입니다.’

맛집에 들어선 우리는 메뉴판 아래 커다랗게 쓰인 문구를 발견했다. 자리를 잡자마자 자연스레 다시 일어나 반찬이 진열된 곳으로 갔다. 일행 중 누군가 귀엣말로 “좀 너무한 거 아냐? 기본 반찬도 안 주고 갖다 먹으라니.” 한다.

런던을 여행하던 중 카페에 들른 적이 있다. 커피를 마시고 나오면서 우리는 마신 컵을 도로 쟁반에 담아 갖다 주었다. 여종업원은 깜짝 놀라 연신 ‘미안하다, 감사하다’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놀란 쪽은 오히려 내 쪽이다. 뭘 당연한 걸 가지고 호들갑인가 싶어 “왜 저러냐?”고 아들에게 물었다.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본인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고객이 대신해주었으니 저리 고마워하는 것이란다. 자기네 말이면서 그들은 셀프도 모르는가 의아했다. 우리는 셀프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 셀프 세차장, 셀프 주유소, 셀프 계산대…….

 셀프서비스를 사전에 찾아보면 ‘대중식당이나 슈퍼마켓, 주유소 등에서 서비스의 일부를 손님이 스스로 하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나와 있다. 이를테면 ‘스스로 알아서 척척척’ 자기 일은 자기가 하라는 거다.

기계에 카드를 들이밀고 주문하면 로봇이 음식을 가져다준다. 無言, 無表情, 無感情이 통용되는 세상이다. 사람보다 기계와 친해져야 하니 손님은 외롭다. 서비스는 뒷전이고 셀프에 무게가 더 실린다. 고객의 자발적 셀프가 아니라 업주로부터 무언의 강요를 당하는 기분이다. 셀프서비스를 받았다고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줄었다거나 그만큼 더 친절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면 업주 또한 억울할 것임을 안다.

중식당을 운영하는 아들은 늘 직원을 구하느라 애를 먹는다. 일이 좀 힘들어도 안 되고 보수가 적어도 안 된다. 알바생도 구하기가 만만찮다. 최저임금을 지급한다 해도 인건비 때문에 감당이 안 된단다. 일을 가르쳐 놓으면 금세 그만두기 일쑤니 마음 놓고 일할 수가 없단다. 업주와 종업원의 팽팽한 줄다리기다. 그러니 일은 기계에 맡기고 외국인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다.

사오십 년 전에 비하면 취업 희망 인구의 절대 수치는 줄고 일자리는 다양해졌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갈 곳이 없다. 돈이 된다면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 헤매던 예전과는 가치관도 많이 달라졌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적당히 일하고 즐기며 생활하기를 원한다.

일손이 필요한 곳에서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가 타는데 청년 일자리는 태부족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고학력의 눈높이가 문제인가, 기대에 못 미치는 저임금이 문제인가, 아니면 사람 손을 앞서가는 기계가 문제인가.

 아침저녁으로 순찰하는 아파트 경비원의 미소가 그립고, 톨게이트에서의 친절한 하얀 손이 아쉽다. 반찬을 내어주며 “맛있게 드세요.”라는 일상적인 인사마저 영영 사라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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