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현대 그림책의 거장인 키티 크라우더의 ‘대혼란’은 얼핏 제목과 내용이 연결되지 않지만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맥락을 잡게 된다. 가느다랗지만 선명한 데생 그림과 풍부한 내용의 글, 독특한 구성이 내용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물건들은 단지 정리정돈 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것 같이 어지르며 사는 이도 말끔한 환경을 그리워하기도 하는 걸 보면 결국은 이런 삶도 저런 삶도 공존한다는 걸 말한다고 할지. 그걸 인정하게 된다면 서로 보완해가며 세상은 일사불란할 필요 없이도 잘 굴러가게 되려는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 그 속에서 주인공 에밀리언은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어지러운 집 안에서 거리낌없이 살아간다. 반면 이웃에 사는 친구 실바니아는 들를 때마다 왜 이렇게 사냐고 구박한다. 에밀리언은 친구를 계속 만나려면 정리정돈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지만 어디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해하지만 여섯 날에 걸쳐 집을 정리정돈 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어질러 놓은 물건들을 정리할 시간도 생각도 없는 에밀리엔. 지나치게 집을 치우고 그것에 집착하는 실바니아. 그 중간에 있는 미크. 이 세 친구는 물건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이 있다. 온갖 물건을 어질러 놓고 발 디딜 틈조차 없고 물건을 찾으려다 못 찾으면 다른 물건을 쓰고 자유롭고 행복하면 된다는 주인공 에밀리엔.

잔소리는 하지만 집은 늘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고 예쁜 실바니아가 부럽기도 하다. 그런 실바니아 때문이라도 정리정돈을 어렵게 느리게 진행한다. 미크의 집에 들러서는 어떻게 집안의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느냐고 묻자 자기는 물건들을 좋아해서라고 답한다. 자질구레한 물건들도 그걸 만들어 준 사람이 있고 그것의 일대기가 있다고 말한다. ‘모두가 오오 하는 우리집을 청소하는 비결서’도 보면서 열심히 정리정돈을 하니 전혀 다른 집으로 변해간다. 그런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였는데 실바니아가 오지않아 집으로 찾아간다. 그러다가 고양이를 따라간 곳에서 그동안 실바니아가 쓰다가 싫증나 버린 쓰레기더미를 발견하고 그 비밀을 미크에게 말한다.

에밀리엔과 미크와 고양이는 실바니아가 오지 않아도 신나게 놀기로 한다. 얼마 뒤 실바니아가 미안하다며 케익을 들고 찾아온다. 서로 어울려 밤새도록 놀다 어질러놓은 것들은 아랑곳없이 잠이 들고, ‘우리집도 마구 어질러 볼까? 낮에는 질서가 필요하지만, 밤에도 그런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난 잠을 자니까......’라고 실바니아가 중얼댄 것 같기도 하다. 실바니아는 정리강박에서 어지를 자유를 획득?

세 인물 이야기는 세 유형 뿐 아니라 생활의 어떤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깔끔떨기도 하다가 어지르기도 하다가 어중간하게 늘어놓고 살기도 하는.

어차피 완벽한 삶이란 없고, 사는 방식이야 다양할 수밖에 없다면 다른 이웃, 다른 방식을 적절히 좋게 여기며 각자 처한 사정을 조금씩 달리 바꿔보기도 해보자는 것일 수도. 나이 먹으며 살다보니 체력되는 대로 사정 닿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너무 고집부리지 말고 그때그때 여건따라 순하게 살면 되려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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