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자의 잠시만요] 새는 한 나무에서 벗하지 않는다
[강현자의 잠시만요] 새는 한 나무에서 벗하지 않는다
  • 충청매일
  • 승인 2022.01.0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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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엄동설한의 냉기가 뼛속을 파고든다. 유릿가루 같은 눈발이 어깨를 스치며 허공에서 흩날린다. 잔뜩 움츠리고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겁다. 찬바람을 몸에 잔뜩 묻히고 한 사내가 부동산사무실로 들어선다.

건장한 어깨가 축 처졌다. 피로에 지친 모습이다. 이사 날짜가 임박한 것으로 보아 이미 여러 부동산을 거쳐 온 듯하다. 월세는 시세보다 웃돈을 내도 괜찮다고 했지만 아이가 딸린 세입자를 원하는 임대인은 아무도 없었다. 맥없이 돌아서는 젊은 가장의 뒷모습은 절망의 울타리였다. 아이 때문에 가는 곳마다 거절당했을 젊은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렸을까.

곧이어 월세를 놓아달라는 중년의 여자가 찾아왔다.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당차 보였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여자는 구구절절 임대조건을 설명한다. 보증금이나 월세를 싸게 놓는 다른 임대인을 타박한다. 회사인은 약속을 안 지키니 아예 월세를 더 받겠단다. 반려견은 물론이고 아이가 있으면 시끄러워 안 된단다. 그편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건만 얘기를 듣고 있는 내내 왜 그렇게 씁쓸하던지.

임대인과 임차인의 거리는 천 리만큼 멀었다. 갑이 요지부동 바윗덩이라면 을은 흩날리는 깃털일 뿐이다. 다른 것은 그렇다 치고 아이 때문에 방을 구하지 못해 발길을 돌린 젊은이의 처진 어깨가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깃털은 머물 곳이 없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자치단체마다 인구감소를 막겠다며 출산 장려금으로 100만원을 지원한들, 1천만원을 지원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이가 걸림돌이 된다는데….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한참 뛰면서 크는 아이를 저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을. 뛰어야 크는 아이를 둔 부모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아이 때문에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니 내 집 없으면 아이도 낳지 못하는 세상이다. 요즘은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를 듣는 것도 흔치 않다. 아이들 소리는 연둣빛 봄의 노래다. 생기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내 손주가 가는 곳마다 이렇듯 외면당할까 속이 아리다.

직업이 다양한 요즘은 밤낮이 바뀌어 생활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참 쉬어야 할 시간에 아이들 떠드는 소리는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것이다. 조용히 잠을 청해야 하는 101호나 뒤꿈치를 들고 걸어야 하는 201호나 불편하기는 모두 마찬가지다.

멀리 담장 너머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앙상한 가지에 참새 떼가 오종종 모여 앉았다. 참새가 물러가면 까치가 몰려오고, 그 까치들이 전깃줄로 오른 다음에야 물까치가 내려앉는다. 그들은 잠시라도 한 나무에서 함께 벗하는 법이 없다.

우리도 새처럼 사는 것은 아닐까. 남의 불편함보다 나의 편리함이 우선이기에 남과 선을 긋는다. 자신의 권리만 온전히 누리려는 지나친 이기주의에 익숙해 있는 것은 아닌지. 새해에는 열린 마음으로 더불어 살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사람이 새처럼 살아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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