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고등학교 시절 성안길에 있는 서점에 가곤 했다. 당시 서점은 약속 장소이기도 해서 늘 많은 이가 있었다. 신간 시집도 구경하고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입구 정면 눈에 제일 잘 띄는 곳은 베스트셀러 코너가 있었고 베스트셀러에는 시집이 포진해있었다. 사춘기 감수성을 자극하는 연애 시집과 김소월, 한용운 등 1920년대 시인들의 시집 그리고 태백산맥, 삼국지 같은 장편소설의 전성기이기도 했고 여행, 음식 관련 책도 인기가 있었다.

나에게 서점은 종이 냄새와 사람의 정취를 알게 해준 곳이다. 기형도 시집을 사 들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한 사람처럼 마음이 설레기도 했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시집을 선물하기 위해 여러 시간 고민하며 서점에 머물기도 했는데, T.S.엘리엇이나 아르튀르 랭보 같은 외국 시인의 시집을 산 기억이 있다.

책을 즐겨 읽지 않았던 나는 대학을 가서는 더욱 서점에 가는 시간이 줄었다. 대학 정문에 서점이 하나 있었는데, 사회과학 서적이 많았다. <자본론> <김남주 평전> <체 게바라 평전> 같은 서적을 샀었던 것 같다. <자본론>은 너무 어렵고 재미가 없어 1권으로 마쳤고 이후 평전 부류의 책을 주로 읽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책이나 서점과 이별한 수준이었다. 남의 시집을 읽지 않겠다는 오만감도 자리했었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온라인의 발달은 종이 자체를 밀어내는 온라인 출판의 시대를 여는 듯했다. 버스나 지하철 승객들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정보를 수집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간혹, 온라인으로 독서를 하는 모습이 TV를 통해 나오기도 했다.

시(詩)의 시대가 끝나고 학교 앞 작은 서점은 참고서나 아동 도서 판매가 주를 이뤘고 잘 팔리는 책은 자서전이나 명언, 삶의 지혜를 공유하는 책이 주를 이뤘다. 현재 상황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는 서점가에도 들이닥쳤고 문을 닫는 서점이 늘어가고 있다. 출산율 저하로 학생 수가 줄면서 참고서적 판매량도 줄었지만, 중요한 점은 서점이 참고서적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몇 해 전인가 사람의 통행이 잦지 않은 대로변에 서점이 하나 생겼다. <꿈꾸는 책방>, 책방이 꿈을 꾸다니. 얼마나 시적인 이름인가. 참고서를 팔지 않는 책방, 책을 위한 책방, 책을 통해 꿈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 공간인가. <꿈꾸는 책방>은 지역 문인들을 매료시켰고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북 콘서트, 낭독회, 저자와의 만남 등을 통해 서점으로 나들이 가는 일이 당연한 일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다양한 프로그램이 매출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책을 위해 공간이 변화하고 사람들과 함께 꿈을 꾸는 모습은 여전하다.

변명하자면, 서점에 가지 않아도 우편으로 전달되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벅찬 세상이다. 여전히 팔리지 않는 책은 쏟아지고 있으며, 반가운 손님처럼 다가온 책과 미처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켜켜이 쌓여만 가니, 저자에게도 미안한 일이지만, 책에는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지역에는 <꿈꾸는 책방>처럼 지역 작가와 연대하여 서점을 살리고자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바람이 이뤄져야 나의 미안함이 조금은 면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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