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쏘기 문화 산책]활터에 살아있는 ‘조선’
[활쏘기 문화 산책]활터에 살아있는 ‘조선’
  • 충청매일
  • 승인 2021.04.1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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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한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서면 그 나라는 여러모로 앞의 나라를 본받기 마련입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면 왕족들은 바뀌지만, 고려의 체제는 대체로 유지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이 망하고 나서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이민족인 일본에게 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회 구조가 급격히 자본주의화로 기울면서 나라 전체가 그전과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전의 모습이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어디에서 옛 조선의 자취를 볼 수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왕궁이나 종묘 같은 곳에 가야 겨우 그 자취를 엿볼 수 있습니다만, 그것도 건물뿐입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조선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혹시 향교나 절 같은 것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것은 종교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시대가 와도 모습이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굳이 조선 시대가 아니라도 그들은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만약에 오늘날 조선 사회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그것이 통째로 전통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곳이 있나요? 이렇게 물으면 저는 ‘있습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가 그럴까요? 바로 활터입니다.

앞서 끊어질 위기에 처한 활터음악과 편사에 대해서도 잠시 말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말을 할 것이지만, 활터는 구조와 운영 방법 모든 면에서 조선 시대의 모습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특히 유서 깊은 활터에 가보면 활터라기보다는 향교나 절에 온 신성한 느낌까지 납니다. 이런 특징은 조선 시대의 장학제도인 사계에서 비롯됐다고 앞서 벌써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량’은 사라지고 ‘궁사’만 남아서 활터를 사격장으로 활용하는 중입니다. 한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조선의 자취가 그 구성원들의 의식 부재와 몰지각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중입니다. 이것이 위기임을 느끼는 사람이 활터 안팎에 거의 없다는 거의 문제입니다.

제가 활을 처음 배우고 직장에서 전화를 받고는 “사두님, 어쩐 일이세요?” 하고 말을 하며 한동안 통화를 하고 끊었더니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막 웃습니다. 왜 웃느냐고 했더니 ‘사두’ 때문에 웃었답니다. 사두가 왜 웃기냐고 했더니 ‘뱀 대가리’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두를 뱀 대가리라고 하기에 저도 동료들도 같이 웃었습니다. 사두(射頭)는 뱀 대가리(蛇頭)가 아니라 활터의 대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활터의 용어는 이토록 독특합니다. 이 독특함은 우리 사회는 변하고 변해서 벌써 몇 바퀴를 돌았는데, 활터는 백 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어서,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는 말을 쓰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편사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활터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것이 순서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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