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시동을 걸자 주유 계기판이 빨갛게 쏘아 본다. 급한 마음에 앞차의 꽁무니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 앞차의 앞에서 달리는 탑차가 시야를 막아선다. 음식 관련 회사의 수송 차량인 것 같다. 자연스레 나의 시선은 그 탑차의 등허리에 머문다.

차를 운전할 때면 으레 앞차의 번호판을 보게 된다. 차량번호 네 개의 숫자를 가지고 해석을 하거나 두운을 맞춰가며 쓸데없이 뇌의 기억장치 회로를 작동시키려 드는 것이다. 차 번호가 ‘8947’이면 ‘팔구 샀지. 아하, 팔고 새로 샀구나.’ 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오늘은 앞차의 번호판이 보이는 게 아니라 그 너머 탑차에만 눈길이 갔다. 커다랗게 쓰인 두 줄의 카피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미련과 밥은’

그리곤 다음 줄에 있을 문구가 보이지 않는다. 궁금하다. 그다음 말이 뭘까. 주행 속도를 조절해보지만, 앞차에 가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럴수록 궁금증은 탑차의 높이만큼 커져만 간다. 내 기어이 보고 말리라. 편도 1차선이라 추월할 수도 없다. 속도를 늦추어 멀찌감치 물러서면 보일까만 뒤따라오는 차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미련과 밥이 뭘 어쨌다는 거지? 둘의 공통점이 뭘까? 나름대로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본다.

미련과 밥은…….

이미 퀴즈가 되어버린 마지막 문구의 정답을 향해 온통 머리를 쥐어짜느라 이제 빨간 계기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차는 이미 두 개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 교차로에서 정지 신호에 멈췄다. 머릿속은 두 단어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궁금증이 더해 간다. 기필코 정답을 맞히고 말리라. 스멀스멀 오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주유소로 향하던 급한 마음은 이미 뒷전이 되어버렸다.

드디어 신호가 바뀌고 그 차는 직진했다. 정답이 발표될 순간이다. 과연 뭐였을까. 좌회전해야 하는 나는 일부러 천천히 핸들을 돌리며 탑차의 카피 문구를 보았다. 마지막 한 마디를.

미련과 밥은 ……

‘남기지 마라.’

남기지 말라고? 무한한 공감과 허탈한 웃음을 내게 던져주고 탑차는 떠났다. 그래, 남기지 말아야지. 무심한 탑차는 뒤엉킨 내 머릿속을 비웃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세상 뭐 그리 어렵게 사냐는 듯이.

어느 날 장자는 나비가 되는 꿈을 꾸고 나서 자신이 나비꿈을 꾼 것인지 나비의 꿈 속에 자신이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렇듯 모든 사물은 각자 독립한 객체가 아니라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 즉 불이성(不二性)이 병존한다고 했다. 부부의 궁합처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도 인연을 맺어 잘 살지 않는가. 세상일이 다 그렇게 어우렁더우렁 조화를 이루게 마련인 것을 뭘 그리 어렵고 복잡하게만 생각하려 했을까. 머릿속에서 해찰을 부리던 미련과 밥이란 말도 단순하게 생각하니 이렇게 조화가 잘 맞을 수 없다. 미련과 밥은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공통분모를 가진 너무도 당연한 궁합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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