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상평통보를 위조하다

[충청매일]

④ 상평통보를 위조하다

최풍원은 전 재산을 담보로 걸고 탄호대감에게 말미를 얻어 북진으로 돌아왔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탄호대감과 약속한 기일을 지키지 못하면 북진여각의 전 재산이 한꺼번에 거덜 나는 것이었다. 최풍원은 허망했다. 평생을 바쳐 이뤄놓은 공든 탑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제와 돌이켜봐야 죽은 아들 부랄 만지기였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벽에 막히고 보니 후회되는 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무리하게 건조한 사선 스무 척이었다. 최풍원이 배를 건조한 것은 이를 이용해 경강상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남한강 일대의 세곡과 부재지주들의 막대한 소작료를 빼앗아 북진여각의 상권을 넓혀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세곡 운반권을 따내기 위해 고을 수령에게 약채로 쓰는 돈이 너무 많았고 운반해 주고 받는 선가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사선을 건조하는 데 들어간 막대한 자금이 빚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배에서 나오는 운임으로는 이자를 꺼나가기에도 급급했다. 거기에다가 장사까지 예전 같지 않았으니 최풍원으로서는 이중삼중의 어려움이 겹친 셈이었다. 북진여각 도중회의 객주들이 대부분 반대를 하며 사선 건조를 반대했지만 최풍원은 고집을 피우며 독단적으로 일을 밀어붙였다. 그때 최풍원은 객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선 건조 대신 지금 같은 어려운 때를 대비하여 자금을 준비해 두었어야 했다. 고을민들을 구휼하겠다고 하미 오천 석을 방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객주들은 반대를 했지만 최풍원은 자신의 고집대로 일을 추진했다. 최풍원의 독단이 계속되자 도중회 객주들은 불안을 느끼며 북진여각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지금의 북진여각이 직접적으로 힘들어지게 된 것은 무리한 사선 건조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지만 후회해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최풍원은 북진으로 올라오자마자 청풍관아로 조관재 부사를 찾아갔다. 조 부사에게 화폐 주조권을 부탁할 요량이었다. 지금 북진여각에 닥친 난관을 타개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그것은 화폐 주조권을 따내는 것이었다. 원래 법정통화로 나라에서 인정한 화폐는 상평통보였다. 조정에서는 화폐의 편리함을 인식하고 팔도에 유통시키기 위해 처음에는 호조·상평청·진휼청·정초청·사복시·어영청·훈련도감과 같은 관청이나 군영으로 하여금 주조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러다 점차 중앙관청은 물론이고 각 지방관청에서도 필요할 때마다 주조하여 유통하는 것을 허락했다. 뿐만 아니라 국고 전담 하에 관청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던 화폐주조가 점차 민간업자에게까지 도급을 주어 주조를 맡기는 경향이 나타났다. 하지만 화폐 주조권을 민간업자가 따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 청풍관아는 조정으로부터 ‘충자전’이라는 상평통보를 주조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았다. 충자전은 상평통보를 만든 지역을 표시하는 것으로 충청도에서 만들었다는 것을 뜻했다. 지난 유월 청풍을 비롯한 남한강 일대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봄부터 비가 내리지 않아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땅에 쏟아진 주먹만한 빗방울은 땅으로 스미기도 전에 급류가 되어 전답과 가옥을 휩쓸었다. 골짜기마다 쏟아져 내린 폭우는 강을 넘어 밀물처럼 밀려들어 마을까지 삼켜버렸다. 북진 앞 나루도 범람하여 강물이 바다를 이뤘다. 강물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며 강가 마을들을 덮쳤다. 이 폭우로 강가 마을에 살던 사람들 일백여 명이 강물에 휩쓸려 실종되고 가옥 오백여 채가 전파되었다. 다치거나 가옥이 부서진 백성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가뭄에 홍수까지 겹치며 백성들 살림은 피고름이 날 지경이었다. 민심도 생파리처럼 날카로워졌다. 조정에서는 민심을 수습하고 삼년 여에 걸친 흉작으로 고통 받는 농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충청감영에 삼십만 냥의 충자전 주조를 허락했고 감영에서는 이를 피해가 극심한 남한강 관내의 청풍관아에서 주조토록 했다.

“사또, 이번 청풍관아에 내려온 화폐 주조권을 제게 주시오!”

여느 때 같으면 몇 번이고 밀고 당기며 이득을 위해 서로의 속내를 저울질할 일이었지만 최풍원은 원낙에 사정이 급한지라 곧바로 속내를 내보였다.

“최 행수가 어지간히 급한가 보구려!”

조관재 부사가 최 행수의 다급함을 눈치 채고 넌지시 속내를 떠보았다.

“사또, 솔직히 말씀 드리리다. 저는 지금 당장 오만 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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