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청풍부사와 짜고 구휼미를 고패시키다

[충청매일] ② 청풍부사와 짜고 구휼미를 고패시키다

북진의 민심은 민심대로 더욱 흉흉해졌다. 먹을거리가 바닥 난 사람들은 송기를 발라내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 이미 북진 인근의 산에서는 성한 소나무 몸뚱아리를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소나무마다 벌건 속살을 드러냈다. 그나마 송기라도 먹어 허기를 때우려면 좀 더 멀리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 할 정도로 기아는 극에 다다르고 있었다. 곡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돈도 없고 물건도 없고 이를 살 사람도 없는 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곡물가만 오르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그제야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경창의 구휼미 삼천 석을 급히 내렸다. 청풍부사 조관재가 최풍원을 관아로 불렀다.

“최 행수가 이번 구휼미 운송을 맡아주시오!”

“선적은 어디서 합지요?”

“여주 이포나루요.”

여주는 예로부터 쌀의 주산지로 이름이 나 있는 지역이었다. 품질과 밥맛 또한 팔도 제일이었다. 따라서 여주 쌀은 추수와 동시에 대궐로 진상되고 일부는 한양의 고관대작들 집으로 팔려나갔다. 쌀값 또한 여느 쌀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다. 최풍원은 북진나루에 닻을 내리고 있는 배를 여주로 내려보내 구휼미를 싣고 북진으로 올라올 생각이었다. 최풍원이 건조했던 사선의 절반은 벌써 여러 달째 북진나루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대로 향시가 열렸을 때는 간간이 북진여각의 상권을 돌며 물산들을 운송했지만 장마당에 장꾼들이 모이지 않자 이제는 그마저도 배를 띄울 일이 없었다. 당연히 배들은 세곡을 실어 나르는 봄철을 제외하고는 벌써 수년 째 북진나루에 정박해 있는 날이 많았다. 나머지 절반의 사선들도 봉화수가 삼개나루와 서해를 오가며 어물전 객주들의 수산물을 운송해주며 선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사선에 들어간 건조 비용과 나날이 불어만 가는 빚을 갚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최 행수, 내 당신과 긴히 할 말이…….”

조관재 청풍부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뜸을 들였다.

“무슨 말씀이시온데?”

“조정에서 굶는 우리 고을민들을 위해 구휼미를 준다고 하나 거저 주는 것이 아니고, 가을에 이자를 쳐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당장 먹을 것도 없어 씨앗조차 파먹을 지경에 가을에 무슨 수로 농민들이 갚는단 말이오. 만약 가을에 제대로 거둬들이지 못하면 나만 문책 받을 것 아니겠소?”

“사또, 환곡도 아니고 구휼미라면 당장 굶어죽게 된 백성들에게 나라에서 무상으로 내려주는 것이 아닌지요?”

“조정에서 내렸다 하나 내가 특별히 상소를 해 여주 관아에서 빌려오는 것이오. 그러니 가을에는 다시 여주 관아로 입고를 시켜야 하오. 내가 우리 고을민들의 살림살이를 살펴보니 가을이라고 형편이 나아질 리 없소. 그래서 내가 따로 보관을 하려고 하는 데 최 행수 생각은 어떠시오?”

언뜻 조관재 부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가 농민의 처지를 생각해서 하는 처사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 속에는 조정에서 내려온 구휼미를 굶어 죽어가는 농민들에게 풀지 않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모사를 벌이려는 꿍꿍이가 숨어 있었다. 조 부사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환곡과 구휼미는 엄연히 달랐다. 환곡은 춘궁기에 굶는 백성을 위해 봄에 곡물을 꾸어주고 가을에 이자를 붙여 받아들이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구휼미는 가뭄이나 수해를 당하거나 피치 못할 재난으로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하려고 나라에서 무상으로 내리는 곡물이었다. 당연지사 구휼미에는 원금이나 이자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조 부사는 구휼미를 환곡으로 둔갑시키려 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아전 술 한 잔이 환곡 석 섬’이라는 말이 있었다. 아전들에게서 얻어먹은 환곡을 백성이 갚지 않고는 배겨날 수가 없었다. 설령 농민이 꿔먹고 갚지 않으면, 아전들은 그 집 기둥뿌리라도 빼올 사람들이었다. 집도 절도 없는 백성이면 남의 마누라 고쟁이라도 벗길 위인들이 그들이었다. 그런데 가을에 갚지 못할 고을민이 걱정되어 조정에서 내린 구휼미를 풀지 않는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었다. ‘고양이 쥐 생각’이었다.

“조정에서 내린 구휼미를 관아 창고에 쌓아둘 수는 없는 일 아닌지요?”

최풍원은 조관재 부사의 속내를 간파하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르는 체 딴청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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