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행수 어른, 지금 형편에 그만한 돈얼 감당헐 수 있는가유?”

매포객주 박노수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최풍원을 건너다 보았다.

“여러 객주덜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힘든 상태요. 더 큰 문제는 지금 상태가 조금만 더 지속된다면 북진여각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오!”

최풍원 역시 별 뾰족한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라고 그것을 모를 리 있겠소? 대체 지금 여각이 지고 있는 빚이 얼마나 되오?”

영월 맡밭나루 성두봉 객주가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림잡아 십만 냥쯤 될 것이오.”

“십만 냥이유?”

최풍원의 대답에 장회객주 임구학의 큰 입이 ‘떠억’ 벌어졌다.

“사선 건조비로 삼만 냥 넘게 들어갔고, 삼개나루 상전 개설에 이만 냥, 지난 춘궁기에 푼 하미 오천 석에 일만 냥, 청풍관아에 밀린 공물 대금 일만냥, 나머지는 이제껏 청풍과 충주관아에서 이권을 따내느라 약채로 쓴 돈이오.”

“행수 어르신, 하미 오천 석과 공물 대금은 꿔준 것이니 받으면 되잖은가요?”

최풍원이 조목조목 열거하자,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서창객주 황칠규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놈아! 쌀은 이미 뱃속으로 들어가 똥 된 지 오래고 꿔간 농민들은 갚으려고 해도 뭐가 있어야 갚지. 그리고 벌써 이 년 전 공물 값도 주지 않고 있는데 신임 부사가 뭐가 급하다고 그걸 주겠냐. 줄 놈들이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뭘 받으면 된다는 겨?”

물정 모르는 황칠규에게 하진객주 우홍만이 발끈하며 핀잔을 주었다.

“배곯는 농미들 뱃속으로나 들어갔다면 아깝지나 않지, 하미 태반은 부자놈들 곳간으로 들어가 그대로 쌓여있을 것이구먼.”

아무리 생각해도 분하다는 듯 맡밭나루 성두봉이가 자신들 뱃속을 채우려고 하미까지도 빼앗아간 관아 아전들과 지주 부자들을 질타했다.

“쓸데 없는 소리들 그만 하고, 그래 최 행수는 어찌 했으면 좋겠소?”

“청풍관아와 고리를 끊을 수는 없고, 최소로 줄여 조 부사의 요구를 들어주고 기회를 봐서 밀린 공물값도 받고 또 다른 이권을 따내는 것이 좋을 듯 싶소.”

“그 정도 돈은 만들 수 있소이까?”

“힘들지만 만들어봐야지. 문제는 흉년에다가 매기가 전혀 일어날 기미가 없으니 빌려도 빚을 갚을 길이 묘연하다는 거요.”

“규모를 줄이면 어떻겠나?”

“규모럴 줄이다니?”

심봉수의 물음에 최풍원이 되물었다.

“삼개상전을 정리하면 어떻겠는가?”

“그건 안 되네! 줄이려면 북진여각을 줄여야 하네. 이제 시골 향시는 점점 버티기가 힘들어질 걸세. 질도 좋고 값도 싼 한양 공방 물건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데 시골에서 틈틈이 만드는 물건이 상대가 되겠는가? 그러니 우리도 한양에 발판을 하나 만들어놓고 경상들이 구할 수 없는 이곳 특산물을 선점해 우리 배로 직접 싣고 가 판매를 해야만 우리가 살 길이네. 결국은 삼개상전이 지금의 이 난관을 벗어나는 데 큰 힘이 되어줄걸세!”

최풍원은 확신했다.

“하지만 그것도 앞으로 일이고, 당장 여각을 유지하는 게 급선무 아니겠소이까?”

하기사 덕산객주 임칠성이의 말처럼 우선은 북진여각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장마당의 거래가 거의 끊긴 상태에서 관아의 물량마저 끊긴다면 북진여각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이었다. 문을 열어놓아도 닫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러려면 조관재 부사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최풍원은 며칠 뒤 조관재 부사를 관아로 찾아가 사정 끝에 일만 냥을 건네주었다. 조 부사는 돈을 받으면서도 당당했다. 오히려 자신이 요구했던 돈의 절반 밖에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해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은 늘 그래왔다.

최풍원으로서는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그만큼의 빚이 또 늘어난 셈이었다. 북진여각의 상권이 커지면서 최풍원의 발목을 잡은 것 중 가장 큰 요인이 수익권을 얻기 위해 관아의 관리들과 아전들에게 들어가는 약채였다. 약채 일만 냥을 만들려면 물산은 삼만 냥, 사만 냥을 거래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곤궁한 시절에는 북진여각 모든 객주들이 파는 물량을 합해도 그만한 액수에 미치지 못했다. 더구나 조정에서는 기아가 극심한 청풍관아 모든 고을에 세곡을 면제했다. 그러자 북진여각은 청풍 관할의 세곡을 수집해서 운반하고 받는 권리조차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북진여각은 날이 갈수록 이중삼중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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