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렇다면 심 객주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나도 최 행수 생각에는 기본적으로 찬성하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장마당이 살아난다는 것도 의문이오. 워낙에 살림이 피폐해져 있는지라 근본적인 살 길을 마련해 주지 않는 한 사람들이 장마당에 나오기는 힘들 것 같소. 그러니 마구 퍼주는 것은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소. 퍼주기 전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겠다는 방책은 세우고 시작해야 하지 않겠소?”

“심 객주, 그래서 삼개에 있는 화수한테 한양에서 나오는 하곡을 몽땅 도거리해서 북진으로 올려보내라 했소. 하곡은 잡곡보다도 헐한 금이니 그걸 나눠주고 대신 그들이 가져오는 특산물을 삼개로 내려보내 한양에서 직접 팔게 하면 이문이 곱절 이상 남을 테니 큰 손해는 없을 듯한데 어떠시오?”

최풍원은 자신의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이미 결정은 난 것 같은데 최 행수가 알아서 하시오!”

어떤 말도 소용없다는 것을 눈치 챈 심봉수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벌써부터 한양 삼개나루 상전에서는 봉화수가 하미를 사선에 실어 북진으로 속속 올려 보내고 있었다. 하미는 미곡 중에서도 가장 품질이 낮은 쌀이었다. 이런 쌀은 한양의 경창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부재지주인 양반과 부잣집 곳간에서 흘러나왔다. 도성 안 광통교 부근과 도성 밖의 용산에는 관곡을 쌓아놓은 저장 창고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관리들에게 녹봉을 주기 위해 곡식을 쌓아 놓은 광흥창, 대궐의 제반 경비로 쓰일 곡물을 쌓아놓은 풍저창, 군량미로 쓰는 곡물을 저장하는 군자창이 그런 것들이었다. 물론 이들 경창에서도 하미들이 나오기는 했다. 팔도에 산재해 있는 강창과 해창에서 세곡이 입고되는 봄에는 새로 입고되는 세곡을 쌓아두기 위해 묵은 세곡을 교체하며 하미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대부분 하미들은 양반과 부자들이 축적해 놓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경창에서 나오는 하미들은 양반과 부자들 곳간에서 나오는 하미에 비하면 질이 월등하게 좋았다. 양반과 부자들 곳간에서 나오는 하미는 몇 년씩이나 묵혀두었는지 가축 먹이로나 쓰일 정도로 썩고 냄새가 났다. 그래도 양반들이나 부자들은 동대문 안의 상전들을 통해 하미를 팔고 있었다. 그런 쌀들은 대부분 굶주린 도성의 유민들이나 흉년이 들어 굶주림이 극심한 팔도 각 지역으로 팔려나갔다. 최풍원이 봉화수에게 하미를 구해 북진으로 올려 보내라고 한 것도 북진의 식량 사정도 다른 지역 못지않게 피폐해졌기 때문이었다. 최풍원은 이 하미를 북진여각 상권 내 객주들을 통해 고을민들에게 공급할 작정이었다.

“여러 객주들은 하미를 가져가 가능하면 헐값으로 사람들에게 풀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산품과 맞바꿈을 하시오. 지금 당장 바꿀 물건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말미를 주고 그들이 해올 수 있는 물건을 가져오도록 하시오. 아까도 얘기했지만 쌀값을 특산물로 받아 우리 배로 싣고 가 한양에서 직접 팔면 큰 손해는 없을 거란 생각이오. 장이 되려면 고을민들이 모여야 헙니다. 그들이 장마당에 나와야 우리 북진여각도 살 수 있소!”

최풍원이 객주들을 거듭 설득했다.

“최 행수가 흐려졌어!”

“사람이 변하면 뗏장을 덮는다는 데…….”

“나라에서도 구제 못하는 백성을 왜 최 행수가 나서서 번접을 떠는거여.”

“이렇게 쌀값이 앙등할 때 돈을 벌어야지, 거저 주다시피 풀어먹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여?”

도중회를 끝내고 나오는 객주들이 북진여각을 나서며 저마다 자신들의 속내를 내비쳤다. 지금 북진여각도 장사가 되지 않아 나날이 쪼들려가는 지경에 이문은커녕 싼값에 하미를 풀겠다는 최풍원 의중을 객주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풍원은 한양 상전에서 올라온 하미 오천 석을 북진 상권의 도중회 객주들에게 모두 분배했다. 그리고 이 쌀들을 사람들에게 저가로 풀어 굶주린 배들도 채우게 하고, 폐장이나 다름없는 장마당 매기도 되살려볼 의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최풍원의 큰 착오였다. 북진여각에서 풀어놓은 쌀은 극히 일부만 고을민들 입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관아 아전과 부자들 곳간으로 모두 들어가 버렸다. 그들로부터 빌려먹은 장리쌀을 갚기 위해서였다. 관아의 아전들이나 부자들이 고을민들의 고혈을 빨아서 착취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장리쌀과 고리대금이었다. 고을민들 중 누구도 고리대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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