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전통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거나 한두 세대에 만들어진 것은 전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몇 세대에 걸쳐 해롭지 않다고 입증되어야 비로소 전통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습니다. 한국의 활쏘기는 그런 전통이 있습니다. 무려 5천 년도 넘는 유구한 내력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전통이 뒷걸음질 칠 때가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전통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입니다. 전통을 배우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옛날에 각궁과 죽시로 배울 때는 적어도 10년쯤은 되어야 겨우 신사(新射)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량궁이 나오면서 상황이 확 달라졌습니다. 각궁 배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개량궁은 그 시간이 대부분 생략됩니다. 사는 즉시 과녁 맞히는 법을 터득합니다. 1년이 채 안 걸립니다. 이 짧은 시간에 시수(矢數)가 구사(舊射)들을 능가하다 보니 과녁 맞히는 능력 하나 터득해놓고서는 모든 것을 다 배웠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착각이 개량궁이 등장한 1970년대부터 일상화되었고, 전통 사법을 배우기는커녕 자신이 터득한 주먹구구 사법으로 전통 사법대로 쏘는 구사들보다 더 잘 맞힘으로써 그들을 넘어섰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활터를 장악한 지 벌써 한 세대 30년이 넘었습니다. 요즘 활터에 올라가서 활을 접하면 사법은 양궁의 그것으로 배웁니다. 자연스레 자신이 전통 사법을 배웠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양궁 사법을 전통 사법이라고 하며 활터에 갓 올라온 애송이 후배들에게 5천 년 어쩌고 하며 가르칩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이런 일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한 발 더 나가, 전통 사법은 온깍지 사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전통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요즘은 반깍지가 전통 사법이노라고.” 실제로 오늘날 활터에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런 얼뜨기 같은 질문과 맞닥뜨렸다는 사실 자체가 활터의 전통이 이미 회복하기 힘들 지경으로 일그러졌음을 잘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자랑스러운 5천 년 전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의 활터 모습이 많이 변형되었다면 우리는 그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변하기 전의 모습을 또렷이 볼 수 있습니다. 요즘 활터에서 가장 오래전에 집궁한 사람들은 궁력이 얼마나 된 분들일까요? 제가 전국을 쏘다니던 2000년 전후 무렵에는 해방 전에 집궁한 분이 15~20분 정도 살아계셨습니다. 물론 그분들께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어본 내용을 녹취하여 2000년에는 ‘이야기 활 풍속사’라는 책까지 냈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해방 전후에 한량들이 어떻게 활터 생활했는지 마치 손금 보듯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전통 사법에 관한 내용도 고스란히 있습니다. 해방 전에 집궁한 분들에게 직접 동작을 보여 달라고 하여 사진도 찍었고, 우리가 아는 사법에 대해 이것저것 여쭈어 그대로 기록으로 남겼고, 따라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활쏘기 모임을 열고 서로 배웠습니다. ‘온깍지궁사회’활동은 이런 과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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