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하늘에서 조명이 번쩍이고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던 날 나는 지구에 떨어졌다. 다행히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지역에 내려와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나의 인생살이가 시작됐다. 반겨줄 가족은 아무도 없다. 이제부터 나 혼자 살아가야 한다.

그날 같이 내려온 친구 물방울을 만났다. 서로 이끌려 하나가 되고 몸이 커졌다. 그렇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나고 만나 어느덧 작은 계곡을 만들어 흘러 내려갔다. 서로 인사 나눌 시간조차 없이 흐르다 보니 더 많은 친구들이 함께 어우러져 계곡을 가득 채워 흐르고 그 힘으로 돌도 굴리며 혈기 왕성하게 흘러 내려갔다. 우린 함께 흘러 내려가며 물고기라는 친구를 만나게 됐다. 처음 만난 친구라 다소 경계했지만 곧 친구가 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다. 또 다른 친구들과 만나면 이야기가 새롭다. 만나는 친구마다 이야기가 바뀐다.

어느새 계곡을 빠져나와 강으로 흘러들어갔다. 지금까지는 바삐 흘렀지만 강에 도착하니 여유롭다. 주변에 마을도 보이고 내가 흘러내려왔던 계곡이 산으로 커다랗게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이야기의 소재가 넓고 다양했다. 굵직굵직한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역시 큰데서 놀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소 빠르게 다소 천천히 완급을 조절하며 흐르다 어찌된 까닭인지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호수에 갇혔다는 것이다. 유람선이 떠다니고 지저분하게 부유물도 떠다닌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미 오염되어 질이 좋지 않은 듯 했다. 얼른 벗어나려  몸부림쳐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몇 날을 지체하다 좁은 탈출구를 발견하고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간 정체되어 답답했던 가슴을 속 시원히 털어내려고 거침없이 흘러 내려갔다. 서로의 발목을 부여잡지 않고 도와가며 시원하게 흘러내려 갔다. 쾌속 질주다.

길고 긴 여정 속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흘러 가다보니 어느새 바다라는 종착지가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됐다. 중간 중간에 많은 친구를 만났지만 잃은 친구들도 많다. 하늘로 증발한 친구, 모터의 힘에 강제로 논밭으로 이끌려간 친구, 호수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해 갇혀 있는 친구. 어쩔 수없는 이별을 겪으며 살아왔다. 삶의 과정이다.

우리네 인생 물과 같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가. 흐르고 정체되고, 걷고 달리고 숨 가쁘게 살아왔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그러면서도 남의 발목 잡는 일은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것이 곧 인생인가 보다.

내가 흐르고 싶은 곳으로만 흐를 수는 없다. 수많은 장애물들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얼마나 잘 극복하고 살아가느냐가 성공의 승패를 결정한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과정도 거처야 하고 호수에 갇혀 답답한 세월을 보내기도 해야 한다. 스스로 극복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살아가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흐를 수 있도록 스스로 능력을 키워야 하겠다. 만나고 헤어지고 좋은 인연 나쁜 인연. 모두 나를 위함이다. 과정을 겪으며 성장하고 성장 속에서 발전한다. 주변에 물들지 말고 아니 나로 인해 주변을 물들이지 말고 묵묵히 흐르는 물과 같이 물길로만 흘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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