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투수 수난시대에 나홀로 ‘독야청청’

 

마무리 수난시대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 클로저들이 연일 경기 막판 흠씬 두들겨 맞고 있다.

두산 김강률, KIA 김세현에 이어 넥센 조상우까지 흔들리는 요즘이다. 이런 가운데 한화 마무리 정우람(33)의 선전이 돋보인다. 구속이 빠르지는 않지만 정교한 제구와 절묘한 체인지업으로 독수리 군단의 뒷문을 단단하게 잠그고 있다.

정우람은 지난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 리그’ 넥센과 원정에 10대 9로 앞선 9회말 등판해 승리를 지켜냈다. 1이닝 동안 안타와 볼넷 1개씩을 내줬지만 삼진 2개를 솎아내며 1점 차 리드를 잃지 않았다.

올 시즌 12세이브째로 단연 1위를 달렸다. 올해 16경기 1승 12세이브 평균자책점(ERA) 1.23의 철벽 투구다. 14⅔이닝 동안 자책점은 2개에 불과하다. 피안타는 9개, 볼넷은 4개에 탈삼진은 무려 18개나 된다. 이닝당 출루허용이 0.89, 한 이닝에 한 타자도 채 되지 않는다.

넥센 마무리 조상우가 블론세이브를 한 터라 정우람의 역투가 더 빛났다.

조상우뿐만이 아니다. 올해 적잖은 마무리들이 앓고 있다. 김세현은 조상우와 같은 4블론세이브에 ERA 9.24로 2군에 내려갔고, 올해 두산의 클로저였던 김강률 역시 시즌 초반 부진해 2군에 내려갔다가 복귀해 그나마 살아나고 있다. LG 정찬헌도 9세이브에 블론세이브가 3개다.

이런 가운데 정우람이 독야청청하고 있다. 더욱이 정우람은 강속구 투수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마무리들은 흔히 강속구로 윽박지르는 유형이 많다. 타자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경기 막판인 만큼 배트 스피드를 구속으로 누르는 것.

그러나 정우람은 140km 안팎의 속구에도 우타자 바깥쪽을 자유자재로 공략하는 제구와 힘있는 볼끝으로 구속의 약점을 극복한다. 여기에 리그 정상급 체인지업 등 영리한 투구로 수싸움에서도 앞선다.

이런 기세라면 생애 첫 세이브 타이틀도 바라볼 수 있다. 다른 마무리들이 살짝 부진한 터라 가능성이 적잖다. 정우람은 SK 시절이던 2008년과 2011년 모두 홀드왕(25개)을 차지할 만큼 정상급 불펜이었다. 한화로 이적한 2016년부터는 붙박이 마무리를 맡아 지난해 26세이브로 3위에 오른 데 이어 올해 타이틀을 노릴 기세다.

만약 정우람이 세이브왕에 오른다면 한화 구단 역사상 26년 만이다. 한화는 전신 빙그레 시절 송진우 투수 코치가 1992년 1위(17세이브)에 오른 게 마지막이었다. 송 코치는 1990년에도 27세이브로 1위에 오른 바 있고, 이전에는 이상군 전 감독대행이 1988년 1위(18세이브)를 차지했다. 송 코치는 2003년까지 시상했던 구원왕(구원승+세이브)도 해당 연도에 수상했다.

공교롭게도 송 코치는 올해부터 한화에 4년 만에 지도자로 복귀해 정우람과 만났다. 송 코치는 1989년 입단 당시부터 한창 때는 강속구 투수로 각광을 받았으나 이후 정교한 컨트롤러로 변신했다. 심판진이 송 코치의 공으로 스트라이크존을 만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파이어볼러 마무리의 수난시대에 든든하게 한화의 수호신으로 빛나고 있는 정우람. 과연 송진우 코치 이후 26년 만의 독수리 구원왕에 오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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