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하늘 높이 솟아있는 나무숲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을 걷는다고 상상하면 그 청량함과 더불어 마음마저 편안해지는 것 같다. 숲으로 가는 이유는 아마도 일상에서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정화하고 새로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함인지 모른다.

빌 브라이슨 또한 그랬다. 숲을 선택했다. 영국에서 기자로 일하던 브라이슨은 20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와 동부 작은 마을에 정착한다. 브라이슨은 자신이 사는 마을이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총 길이 3천360km에 달하는 장거리 등산 코스를 종주할 동지를 찾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책은 세스 노터봄, 폴 서루와 함께 세계 3대 여행 작가로도 유명한 그가 엉뚱하지만 재미난 친구인 카츠와 애팔래치아 트레일 코스를 동행하며 특유의 솔직하고 유쾌한 필체로 유머러스하고 위트 넘치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산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위험을 나열하면서 어느 날 밤, 곰이라고 느껴지는 동물의 캠프 습격 일화를 소개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눈을 보고 사색이 되는 빌 브라이슨은 긴장감을 이렇게 생생하게 전했다. ‘두뇌 속의 모든 신경이 깨어나고 미친 듯이 서로 돌진하면서 충돌했다.’ 다만 친구 카츠는 어이없게도 손톱깎이를 준비해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여정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처음 만든 사람의 이야기, 산림청 및 공원관리국의 실태 그리고 자연에 관한 이야기, 한 지역이 어떻게 쇠락해갔는지 경험한 지역의 역사도 정확하고 방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책을 덮고 나니 여행은 목표였던 종주라는 목적성은 큰 의미가 없다. 산행 과정에서 목도되는 숲에 대한 경외심, 험난한 모험, 자연에 대한 묘사 속에서 두 친구의 긴 여정을 통해 온전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저자는 숲 속에서의 자신을 어떤 약속이나 의무, 속박, 임무, 특별한 야망은 없이 투쟁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권태의 시간과 장소에 높여 있는 존재일 뿐이라고 말한다. 대자연 속에 오로지 ‘나’와 만나는 시간, 자유와 여유로움이 아닐까 넌지시 생각해본다.

“우리는 서두르지도 않고, 어떤 목적도 없이 휴일을 맞은 산 사람의 기분으로 걸으면서 특별한 주제 없이, 끊임없이 계속 담소를 나눴고…(중략) 풍요로운 햇빛과 무한히 펼쳐진 은빛 철길의 미광, 그리고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발을 옮겨 딛는 단순한 기쁨을 맘껏 즐겼다. 거의 해질 무렵까지 걸었다. 마침표를 찍는 완벽한 방법이었다.”

책 속의 문구다. 그들은 종주를 완주하진 못했으나 온전히 나를 만나는 시간을 완성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느껴졌다. 단단한 내공이 있는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을 만나면 누구든 발이 들썩인다. 숲으로 여행하기 딱 좋은 이 계절에 책을 읽고 떠나보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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