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은 안전보건공단 충남지사 산업안전부장

안전의 시작과 끝은 정리정돈입니다. 정리정돈은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고,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은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가지런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없이 들어온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왜? 말로만 하기 때문입니다. 작업자에게 정리정돈을 하라고 지시만 하지 정리정돈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정리정돈은 선긋기에서 비롯됩니다. 보행자 통로, 물건이나 대차를 놓는 위치를 지정하고 그곳에 선을 그어 주는 것입니다. 사업장에서 선긋기만 잘해도 안전의 대부분은 해결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가끔 유원지에 놀러 가면, 주차선이 그려져 있는 주차장과 그렇지 않은 주차장을 볼 수 있습니다. 주차선이 그려져 있는 주차장에는 차량을 안내하거나 교육하는 사람이 없어도 똑바로 주차를 합니다. 가끔은 운전이 서툴거나 개념이 부족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운전자는 똑바로 주차를 합니다. 이런 곳에서는 접촉사고도 별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차선이 없는 곳에서는 주차요원이 안내를 해도 삐뚤삐뚤 주차가 됩니다. 첫 번째 사람이 약간만 어긋나게 주차를 해도 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흐트러지고 맙니다. 이런 곳에서는 자연히 접촉사고도 자주 발생하고, 고성이 오가는 볼썽사나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사업장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긋기가 제대로 된 사업장에서는 물건이 가지런히 정리가 됩니다. 보행자 통로를 그려 놓으면 특별히 교육을 하지 않아도 그곳에는 물건이 놓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이 그어져 있지 않으면 작업자는 임의로 판단하고 돌출행동을 시작합니다. 근로자가 10명이면 10명이 각자 판단하고, 각자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같은 물건도 10개 장소에 각각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용하기 편한 위치가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능력으로는 수행할 수 없는 거창한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 놓고 실천하지 못하는 사업장을 보게 됩니다. 이런 사업장은 대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거나 면피용일 뿐 안전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사업장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요? 사업장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안전관리계획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조용히 선긋기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얼마 후면 근로자의 행동이 달라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버릴 물건이 있으면 빨리 버려야 합니다. 쓰지도 않는 물건 아깝다고 모아 두면 공간만 차지합니다. 당장 쓰지 않는 물건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평소에는 잘 가지 않는 지하실이나 보일러실, 펌프실, 공기압축기실, 그것도 아니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계단 밑이나 기계 뒤편에 놓게 됩니다. 어쩌다 그곳에서 기계가 고장이 납니다. 누군가는 수리를 해야 하는데 쓰레기가 산더미라 기계 수리는 고사하고 쓰레기 치우다가 부상까지 당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기본에 충실하지도 못하면서 마치 도깨비방망이라도 얻을 듯이 더 낳은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엉뚱한 곳에서 해법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전관리의 시작은 정리정돈이고, 정리정돈의 시작은 선긋기이고, 선긋기의 시작은 쓰지 않는 물건(불필요한 물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선을 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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