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참결 청주오송도서관 주무관

내 나이 서른아홉 살, 흔히들 말하는 아홉수. 내년이면 내 나이 40세. 불혹의 나이를 앞둔 지금 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10대 시절부터 30대인 지금까지는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며 시간의 소중함을 듣고 배우긴 했어도 크게 몸으로 느끼지 못한 시절이었고, 그 시절 그 시간을 허비할 때는 온갖 이유를 붙이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며 나 자신을 위한 변명거리를 찾아내고 합리화하기에 급급했다.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고 보니 지나간 아쉬운 과거보다는 현재 또는 다가오는 미래를 어떻게 보낼까, 후에 뒤돌아봤을 때 아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에서 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시간을 그냥 흘러 보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10년! 40대 시절을 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래서 종종 40대 시절을 보내고 있는 분이나 보낸 분들을 만나게 되면 항상 물어보게 된다. ‘40대를 보낸 뒤돌아봤을 때 후회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혹은 보람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앞서 세월을 보낸 선배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삶의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하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조언은 조언일 뿐이었고, 참고사항이며 결국에는 어떻게 보낼까, 어떻게 살까, 이 결정은 모두 내 몫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가치관도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는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 같아도 나에게는 남다른 시간일 수 있고, 나에게는 알찬 삶이 타인의 눈에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는 삶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에 읽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라는 책 이야기를 하고 싶다. 등장인물 중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젊은 여인이 전시회에서 어느 평론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그 후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은 나쁘지 않은데 깊이가 없다는 얘기를 주고받기 시작하며 결국에는 그 젊은 여인은 그 말의 강박에 사로잡혀 그림 한 점을 그리지도 못하고 점점 이상해지다가 끝내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 후 그 평론가는 그녀의 초기 작품에서 깊이에의 강요가 나타나 있다는 평론을 했다.

‘깊이에의 강요’라는 책 내용을 음미하고 미혹되지 아니함을 의미하는 불혹, 40대를 앞두고 앞으로 남은 5년, 10년의 인생을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노력하며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