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서기]물
[물구나무 서기]물
  • 충청매일
  • 승인 2016.09.1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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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희 수필가

 비가 온다. 목마름으로 갈증에 탄 대지 위에 생명수 같은 단비가 내린다. 새벽부터 유리창을 타고 흐르던 빗방울 소리가 조금씩 커진다. 베란다 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늘어졌던 나무들이 양팔을 벌려 비를 맞고 있다. 얼마나 오랜만에 맛보는 물이던가. 1층 화단을 둘러보니 화초들이 두런두런 속살거린다. 폭염으로 하루하루 메말라가던 화초들이 빗방울에 흠뻑 젖어 잔치라도 벌일 모양이다. 물이 없으면 식물도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랴.

젊고 건강하게 사시던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어머니는 흡인성 폐렴이라고 했다. 평소 건강은 자신하던 어머니 몸에는 하루가 다르게 수액 주머니가 늘어났다. 한쪽에서는 수액을 넣고 한쪽으로는 물을 뽑아냈다.

바늘구멍보다 큰 관을 연결한 호수에서 종일 물이 빠져나왔다. 어머니 몸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고 피부를 숨 쉬게 하던 어머니의 생명수 같은 누런 물 속에는 가끔 피도 섞여 나왔다. 눈금이 그려진 물주머니에 차는 물이 하루에 1,000ℓ가 넘었다. 소변이 안 나온다고 이뇨제를 쓰더니 소변 줄기에서도 제법 많은 양의 소변이 나왔다. 그렇게 뽑아내는 물 때문인지 어머니의 몸은 잘 마른 나뭇잎 같았다.

무거운 철문 앞에서 하루 두 번 면회시간을 기다리던 날들이 길어졌다. 창가 쪽부터 1번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는 중환자실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환자들이 급하게 움직이는 시침을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서 어머니는 1번 침대에 누워있다. 입원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계절이 벌써 두 번이나 바뀌었다.

어머니 옆에 서면 종일 물소리가 들린다. 뽀글뽀글 어머니의 숨을 대신 쉬어주는 인공호흡기에서 나는 물소리와 기관에 연결한 줄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다. 처음 중환자실에 왔을 때 쿨럭쿨럭, 멈추지 않는 해소 기침 소리처럼 호흡기에서 나는 물소리 때문에 잠들기 어렵다고 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그 소리에도 익숙해져 소리가 안 나면 오히려 불안해하신다.

사람의 몸에는 물이 얼마나 있는 것일까. 간신히 30㎏을 유지하고 있는 어머니의 몸에서 끊임없이 물이 나왔다. 도대체 어머니의 몸 어느 부위에 고여 있던 물일까. 목에서는 수시로 가래를 뽑아내고 혈관에서도 검사한다며 자주 피를 뽑았다. 고인 물을 뽑아내며 다시 수액을 투여하지만, 어머니 당신은 정작 물 한 모금 입으로 넘기지 못했다. 물맛을 본지 오래된 입술은 비쩍 말라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입원하면서부터 수액으로만 견딘 어머니의 몸은 이제 어린아이 같다. 제법 통통하던 뱃가죽도 쭈글쭈글해지고 팔다리는 죽은 나무의 가지처럼 앙상하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곡기를 전혀 입에 대지 못하고 수액만 맞았는데도 사람이 살 수 있다니, 물의 힘이 이처럼 대단하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순간 순간의 위기로 여러 차례 가족을 모두 불러 모았던 어머니가 드디어 인공호흡기를 떼었다. 24시간 환하게 불을 켜놓고 늘 기계 소리와 인공호흡기 소리가 이명처럼 들리던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도 옮겼다. 어머니가 6개월 만에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콧줄로 죽을 드시던 어머니한테 며칠 전부터 주사기로 물을 한 방울씩 입에 떨어뜨려 목으로 넘기는 연습을 했다.

입으로 물을 먹을 수 있다고 했을 때 얼굴 가득 환하게 웃던 어머니가 물 한 방울 넘기는 데 힘이 드는지 잠깐 사이에 얼굴이 붉어졌다. 제발 물 한 모금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시더니 물을 앞에 두고 정작 더 힘들어하셨다. 억지로 한 모금 목젖으로 넘기고는 안 먹겠다고 다시 콧줄로 달라고 손사래를 쳤다. 겨우 어머니의 담백한 소원이 이루어졌는데 이제는 어머니가 거부하신다.

물 먹는 일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었던가. 물 한 모금을 꿀꺽하는 소리가 나도록 삼킬 때면 잘했다고 어머니를 칭찬했다. 그렇게 넘어간 물은 어머니의 세포에 활력을 주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어머니가 일반 병동으로 오신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입으로 음식을 삼키는 것이 자유롭지 않아 식사 때마다 한 차례씩 전쟁을 치렀다. 세상에 물과의 일면식이 이렇듯 어렵단 말인가. 한두 숟가락씩 갓난아기의 우유량을 늘려가듯 물과 죽을 넘기는 것이 나아지니 그나마도 시샘하는지 마른 허벅지에 걸려있는 기저귀를 갈아내느라 엉덩이에 욕창까지 생겼다.

살면서 내가 물을 이렇듯 소중하게, 안타깝게 바라보던 때가 과연 있었던가. 그동안 비어있던 위장에 음식이 들어가기 무섭게 다 쏟아내는 설사 때문에 어머니는 다시 살이 내렸다. 그래도 콧줄을 빼고 입으로 물을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80 평생 처음 물갈이한 어머니의 얼굴이 촉촉해졌다. 나무껍질처럼 물기라곤 하나도 없던 피부에 생기가 돋고 손등에 땀도 흘렀다.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어머니의 몸도 물이 들어가면서 생동의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뿐, 자식들의 애타는 마음을 뒤로한채 어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한달여 동안 30도가 넘게 기승을 부리던 폭염으로 가로수 나무도 모두 지쳐버렸다. 아파트 앞 화단에는 갈증으로 목이 탄 화초들이 하나둘 죽어 뿌리가 뽑혀 나갔다. 화단 앞을 지날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나서 마음이 불편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기진맥진해 있던 이파리들이 링거를 맞는 듯 차츰 생기를 찾아간다. 이처럼 생명이 있는 것들에게 물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비 내리는 아침,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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