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처음 남편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자주 걸었다. 같이 술을 마셨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초봄 어느날, 우리는 무심천 벤치에 앉아 있었다. 천변 벚나무에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봄바람은 제법 쌀쌀해 옷깃을 여미게 했다. 그는 입고 있었던 두툼한 잠바를 벗어 내 어깨에 걸쳐주며 물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야?”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야?”

그 눈빛이 하도 진지해서 나는 눈물을 쏟을 뻔했다. 누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당신을 알고 싶어’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가 내 속으로 훅 들어 온 느낌이었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순간 뭐라고 답 할 수 없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있어?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아니야?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 것에 대해 받은 질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왜 대답하지 못했을까?

사실 나는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고, ‘나’를 거침없이 주장했다. 그 순간 아마도 그게 정말 ‘나’가 맞는가에 대해 주춤했던 건 아니었을까? 고민없이 ‘나’라는 허상을 만들고, 타인들이 ‘나’를 알아봐주기를, ‘나’에 대해 예찬해주기를 바랐던 때였다. 남편과 만났던 당시, 나는 사회운동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런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대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수시로 내게 밥을 샀다. 고작 한 살이 많았을 뿐이고 같은 학생 처지였는데도 말이다.

거대한 것들 속에 나를 가두고 그 거대한 형식으로 ‘나를 봐 줘’라고 오히려 주문했다. 나를 부풀리고 있었다. 무엇엔가 도취된 ‘대단한 나’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더 많은 에너지를 쓰며 살아왔던 나를 멈추게 한 그의 질문은 내가 ‘나’와 대면하게 한 최초의 질문이었다.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수도 없이 많이 받아왔고 나는 막힘없이 줄줄 대답했다. ‘당신은 누구에요?’,‘ 어떤 사람이에요?’,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에요?’ 세상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말했던 내가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선뜻 말할 수가 없었다. 서른이 가까운 그즈음까지. 나는 나를 몰랐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럴듯한 나에게 사로잡혀 있었던 것을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았다. 그럴듯한 나로 바라봐주기를 기대했기에.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 매순간 나는 흔들렸고 그것을 아파했다.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럴듯한 나로 바라봐 주지 않던 사람들 때문에 많은 시간을 번민했다. 어느 순간 그의 질문은 내속에서 살아났다.

그의 질문은 정지화면으로 남아서 내게 대답을 종용했다. “나는 누구냐?”라고 몰아세우던 화면, 그 화면을 끄고 싶기도 했지만, 끌 수 없었다. 그날 그의 질문에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숨고 싶었고 부끄러웠던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도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을 때 가끔은 나를 멈추게 하는 남편의 소리를 듣는다.

“당신이 좋아하는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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