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정ㅇㅇ 어르신 어서 오셔요.”

데이케어센터(낮에 환자를 돌보아 주는 시설) 복지사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시어머니를 반갑게 맞았다.

“어머나! 내 이름을 어떻게 아셨어요?”

어머니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신다.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이 이토록 큰 기쁨일 줄은 미처 몰랐다. 앞뒤 돌아보지도 않고 어머니는 복지사의 손을 꼭 잡고 센터 안으로 성큼 발을 들여놓으셨다.

센터는 집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 여러 번 망설이다 상담이라도 해볼까 해서 예약하고 들렀던 것이다. 이렇게 좋은 반응을 보이시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구에서 운영하는 센터는 장기요양 3~4등급의 노인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마침 한 자리가 비어있으니 내일이라도 당장 입소하라며 권했다.

아침 9시, 아파트 현관까지 어머니를 모시러 센터 전용차가 왔다. 그런데 전날 꼭 가시겠다고 했던 어머니는 아침에 마음이 바뀌었다.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갈아입혀 드리는 등 분주하게 준비를 서둘자 긴장했는지 가고 싶지 않다고, 집에 있겠다고 하신다. 당황스러웠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억지로 가시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 복지사의 출발을 재촉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순간 어제 환했던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얼른 수화기를 대 드렸다. “정ㅇㅇ 어르신 어서 내려오셔요. 차가 왔어요.” 복지사의 상냥한 목소리를 듣자 “어머! 알았어요. 빨리 갈게요.” 금세 명랑해지시는 게 아닌가. 내게 서두르라고 재촉까지 하셨다.

어머니는 활짝 웃는 복지사를 딸처럼 반기셨다. 이미 차에 타고 있던 노인들이 어머니께 인사를 했다. 다들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머니도 금방 따라 하셨다.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 빨리 집에 가라며 손을 흔드셨다.

어머니가 떠나자 아침 내내 했던 가슴앓이에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그냥 가시겠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치 가기 싫다는 어린 딸을 온갖 감언이설로 구슬려 억지로 유치원에 보낸 심정이었다. 잔꾀까지 부린 소행에 스스로 괘씸하기까지 했다. 그냥 집에 모시고 있을 걸, 후회가 밀려왔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나는 어머니가 탄 차를 쫓다시피 센터로 향했다.

직원이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입소자들이 활동하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딸이 다녔던 유치원에도 이런 방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딸의 보호자였던 나는 이제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었다. 필경 먼 훗날엔 아들이나 딸이 나의 보호자가 되어 이렇게 서 있을 것이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미래의 내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실내에는 소파와 의자가 둥그렇게 놓여있다. 차를 타고 속속 도착한 어르신들이 그곳에 앉았다. 나름 안고 싶은 자리가 있어 가끔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단다. 휠체어를 타고 계신 분, 50대로 보이는 치매 환자도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말로만 듣던 조기 치매가 실제로 우리 주변에 있었다.

<나비야>, <퐁당퐁당> 등의 노래와 함께 아침 체조가 시작됐다. 이어서 오늘이 몇 월 며칠, 무슨 요일인지 소리 높여 따라들 한다. 처음 오셨다고 어머니를 소개하자 모두 박수를 쳤다. 어머니께 인사 말씀을 권하자 “처음 만나서 반갑습니다. 같이 재미있게 지냅시다!” 하시는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며 어머니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치매증세가 완화될 것 같은 기대감마저 들었다. 노래도 잘 따라 부르시고, 실 꿰기도 잘하고, 스케치북에 여러 가지 색깔로 그림도 그리셨다.

복지사와 요양사들이 정성껏 입소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점심 수발과 양치질, 화장실 뒤 수발까지 빈틈없이 거의 일대일로 도와주고 있었다. 봉사 나온 대학생들도 차분하게 한 몫을 거들고 있다. 젊음도 전염이 되는지 노인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 보였다. 역시 외로움에는 사람만한 난로가 없었다. 마음이 추울 때는 사람을 쬐어야 한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그 날은 웃음 치료가 있는 날이었다. 선생님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크게 웃으면 모두 따라서 깔깔 웃었다. 집에선 볼 수 없었던 어머니의 환한 웃음이 오히려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옆에 앉아계시는 분과 이야기도 잘하고 아주 즐거워하신다. 말벗이 얼마나 그리우셨으면 저러실까….

이름을 불러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시는데 혹시 자존감을 헤아려드리지 못한 건 아닌지. 언젠가 모 일간지에 ‘치매 환자의 자존감’에 대해 쓴 기사를 읽고 번쩍 정신 들었었다.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시는 걸 보니 그동안 방치했구나 싶어 죄송한 생각도 들었다.

오후 5시에 마중을 나갔다. 다가서는 내게 어머니는 “언니, 어떻게 알고 나오셨어요? 고마워요. 바쁘신데 어쩌면 좋아!” 내 손을 꼭 잡으신다. 나를 올케언니로 인지하고 있는 어머니는 ‘내내 미안해요.’를 반복하신다. 정작 미안한 사람은 나인데…. “어머니 내일 또 가실 거지요?” 곁부축을 해드리며 물으니 “아니야 이제 다시는 안 갈 거예요. 집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나만 놀러 다녀요. 언니한테 정말 고맙고 미안해요.” 어머니의 뒷소리에 물기가 배어있다. 한평생 일에만 묶여 산 당신! 망백(望百)의 아련한 정신에도 일 걱정 놓지 못하는 가여운 우리 어머니! 나는 그만 가슴이 차올라 가만히 안아드렸다.

내일 아침에도 어머니는 오늘처럼 센터에 가지 않으려 또 귀여운 투정을 부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당신 이름을 불러드리면 금세 마음이 바뀌어 얼굴 가득 환하게 꽃을 피우실 게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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