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종합병원 응급실에 긴박한 기운이 감돌았다. 새벽 3시. 지난밤 발목이 골절되어 입원한 딸이 부스스 눈을 떴다. 부산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119대원이 한 남자를 소생실로 옮기고 있었다.

그는 취침 중 뇌출혈을 일으킨 환자였다. 의사는 뇌의 상당 부분에 피가 고여 있어 뇌 손상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당장 수술한다 해도 식물인간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수술하지 않으면요?” 아내인 듯한 50대의 여인이 울음 섞인 음성으로 물었다. “혈압이 높고 맥박도 약해 오래 버티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빨리 결정하셔야 합니다.” 담당 의사의 긴박한 음성으로 보아 환자의 상태를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여인은 넋두리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연전에 위암 수술을 했던 남편이란다. 이제 그가 식물인간이 된다면 또 그 병구완을 어찌할 것인가. 그녀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 변명 하는 것 같았다. 흐느끼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환자의 생명은 그녀의 선택을 기다리며 촌각을 다투고 있었다. 마침내 환자는 수술실 대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과연 그분의 운명은 어찌 되는 걸까.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녀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의 30대를 온통 잿빛으로 물들였던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친정아버지는 꼬박 팔 년 동안 심부전증을 앓다 가셨다. 한 번 들어온 병마는 끝내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다.

제발 참지 마시고 아프다 싶으면 미리 말씀하시라고 신신당부했건만 늘 고통이 위험수위에 이르는 새벽녘에야 아버지는 식구들을 깨우셨다. “왜 진작 아프단 말을 못하냐?”는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묵묵부답이었던 아버지가 병원비 걱정에 그랬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생살에 소금을 뿌린 듯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일주일이 멀다고 응급실을 드나드셨으니 그 고통은 상상을 넘어선 것이었으리라. 응급실의 그 새벽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아버지의 임종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권고가 십여차례나 되풀이되었다. 처음 통보받았을 땐 살려달라고 매달리며 엉엉 울었다. 그때부터 의사의 말이라면 하늘처럼 믿고 따랐다. 팥으로 메주를 쑤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가족들의 지극 정성 덕인지 아버지는 기적처럼 소생하시곤 했다.

그럼에도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긴 간병에 어머니마저 앓아누우셨다. 나 역시 점점 지쳐갔다. 막내 여동생의 결혼식 전날 아버지는 응급실로 또 옮겨졌고 그때 어렴풋이 아버지의 마지막을 읽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막내딸 결혼식까지 억지로 버티신 건 아닐까? 새로 장만한 아버지의 예복이 한스럽게 느껴졌다.

혼수상태가 되신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심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줄줄이 어린 동생들의 교육이 걱정이었던 아버지는 백지장도 맞들면 났다며 맏딸인 내게 의지하려 했었다. 그런 심정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나는 사랑에 눈이 멀어 일찍 결혼을 했다. 박봉에 시달렸던 가장은 야멸찬 딸을 원망도 못하고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이제야 그 마음을 겨우 알게 되었는데 위로의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채 그 분을 떠나보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냥 이런 상태일지라도 살아만 계셨으면! 얼마나 기도를 했던가. 그러나 이미 죽음의 강을 건너고 있는 아버지를 붙잡지 못했다.

미국에 이민 간 남동생이 임종만은 꼭 지켜보게 해달라는 말을 전해왔다. 외아들인 그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의사와 상의해 이미 사선을 넘은 아버지께 기계식 호흡장치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남동생이 당도하기까지 꼬박 하루 동안 아버지의 생명은 인위적으로 연장되었다. 마침내 아들이 아버지의 손을 꼭 잡자 의사는 호흡장치를 멈추고 비로소 돌아가셨음을 알렸다. 순간 나를 감싸고 있던 울타리가 폭삭 무너지는 환영을 보았다.

가족이 함께 임종을 모시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이물질을 가득 달고 계셨던 그 모습은 두고 두고 나를 괴롭혔다. 최선이라 여겼던 것이 이렇게 불경으로 남게 될 줄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나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죽음은 신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가장 성스러운 경로일지도 모른다. 인간인 내가 그 찰나에 감히 신의 판단에 참견을 했었다. 아주 먼 미래에 아버지를 뵙는 날, 내가 한 죄송한 일을 모두 여쭙고 용서를 빌어야겠다.

딸이 아프지 않았다면 다시 떠올리기도 싫었던 응급실이었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너무나 보고 싶다. 딸아이를 일반병실로 옮기려고 수속을 밟는 사이 119구급대의 사이렌 소리가 또 요란하다. 또 응급환자가 도착했나 보다.

희망을 품은 간절한 기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를 위한 진정 후회 없는 선택이 함께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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