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행복나눔협동조합대표이사

지난 10일 문화재청은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기록물과 ‘한국의 유교책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음을 알렸다. 이로서 우리나라는 1997년 훈민정음으로 시작하여 총 13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되어 기록문화의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제적인 강국이나 군사적인 강국도 분명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랜 역사와 함께 찬란히 빛나는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나라와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이며 자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이번의 세계유산 등재는 온 국민이 축하하고 기뻐할 일이다.  

필자는 금년 초부터 충북대학교 서상택교수와 함께 농업회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연구를 위해서는 농업인의 기록물인 영농일지와 회계장부가 꼭 필요한데 이것을 쓰는 농가가 생각같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이고 교수님, 농사짓기도 바쁜데 어느 세월에 영농일지를 씁니까? 저녁이 되면 몸이 피곤하여 세수도 못하고 쓰러져 자는데… 그리고 농사라는 것이 빤하여 다 제 머리 속에 있으니 물어만 보십시오. 다른 것은 몰라도 농사만은 저도 박사입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인삼농사를 짓기 위하여 예정지를 임대하고 2년 동안 작업을 하셨는데 첫해 인부는 얼마나 고용했으며, 임금은 얼마를 지불하셨는지요? 그리고 비료는…”하고 물으면 이번엔 아주 난감해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억은 한계가 있어서 수년 전의 일을 세세히 기억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농업인은 장부는 아니지만 달력에 그날그날 작업내용이나 관련되는 돈 지출을 적어 놓아서 연구에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며 농작물별로 적게는 1년, 길게는 7년 동안의 작업내용을 조사하여 회계장부를 만들어 놓으니 책 두께가 수백페이지가 넘어 연구진 모두가 놀랐다.

며칠 전에 농업회계와 관련된 정부의 공무원과 학교의 연구진이 충북대학교에 모여 세미나를 열었다. 그 때 연구진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한 말들은 농가의 영농일지나 회계장부가 없어 연구를 하는 동안 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기록문화의 강국’을 만드신 조상님께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필자의 은사님 한분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한 것은 그분의 혜안이 남달랐다는 것이다. “여러분 역사라는 것은 꼭 국가적인 사실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생활하면서 있었던 일, 즉 우리 마을에 언제 누가 처음으로 자전거를 샀는데 그게 얼마였다든지. 또 집안에서 할아버지께 환갑잔치를 해 드렸는데 그 비용이 얼마라든지 등을 일기장에 기록해 놓으면 그게 마을의 역사가 되고 또 농가의 가계비를 연구하는 학자에게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 필자가 다시 학생들에게 한다면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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