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우리나라 5천년 역사상 백성들 스스로 일어나 자치조직을 꾸리고 사회를 다스린 경험은 오직 동학이 일어났던 구한말 몇 년입니다. 부패한 지배층은 왕조를 내세워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발버둥 치느라고 정치구조를 개혁하여 역사시간에 이른바 ‘갑오개혁’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똑같은 해에 역사책에 ‘갑오농민혁명’이라고 오른 그 갑오년이 바로 동학의 전 교인이 들어 일어나 부패한 지배층과 혀를 날름거리는 외국세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킨 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동학에 대한 연구가 생각처럼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전설 같은 얘기들뿐이지 언제 어디서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는가, 기록으로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막강한 변화의 주인공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구경꾼들이 남긴 기록들뿐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놀랄 일도 사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동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궤멸 당하고, 그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입에 담기도 어려운 세월을 살았기 때문이죠. 동학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주류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 세력으로 합류하여 강점기 말기에는 유일한 항일세력인 사회주의로 합류합니다. 이렇게 되니 해방 후에 남한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집권에 실패하고 한국 전쟁까지 터지자 멸종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고, 그 와중에 동학은 참혹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동학에 대한 기록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런 사실 자체가 우리 역사의 한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역사학계에서는 답사 형식으로 동학 전적지를 돌아다니면서 그곳 지역 사람들이 풍문으로 전해오는 전설이나 설화를 채록하여 힘겹게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100년이 지난 후에 듣는 풍문이란 그것을 역사 속으로 끌어들이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지영의 ‘동학사’는 정말 귀중한 책입니다. 동학은 3·1독립만세운동에 자금을 댄 후로 여러 가지 방면에서 모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다가 천도교라는 종교단체로 바뀌면서 겨우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다보니 동학에 관한 정보가 가장 많이 흘러나오는 곳도 천도교일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서문을 보면 이 책은 1938년에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동학이 출발할 때부터 동학혁명이 일어나는 과정을 서술한 책입니다. 비록 243쪽에 불과한 작은 책이지만, 동학 당사자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행적을 정리한 책이라는 점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를 지닌 책입니다. 그리고 이후 이처럼 분명하고 근거가 있는 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동학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갔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동학 이야기는 그런 풍문들의 뒷목에 불과합니다. 역사학자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다른 쪽에서 흘러나온 자료를 토대로 동학의 진행과정을 재구성하는 수준입니다.

근래에 중요한 자료가 또 하나 나왔습니다. 동학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집안에 내려오는 자료는 물론 종교 내부에 전해오는 이야기들을 참고하고 이미 나온 역사자료를 토대로 하여 동학의 역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것은 동학 내부의 인물이 동학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동학의 정신까지 살펴볼 수 있는 역작입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