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충북대학교 겸임교수

봄을 타는 것인지 아니면 독감을 앓고 난 후 기력이 쇠해서 그런지 밥맛도 없고 자꾸 잠만 쏟아진다.

며칠 전 새벽에는 늦잠을 자다 그만 새벽기도를 못가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다. 이를 본 아내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보, 안되겠어요.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새벽 5시만 되면 자동으로 일어나시던 분이 늦잠을 다 주무시고, 단순히 봄 탓만 할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오늘 한의원에 가봅시다. 보약이라도 한 첩 드셔야….”

“어허, 보약은 무슨 보약이요. 봄이 되니 나른해서 그렇지. 그리고 한약재가 요사이는 거의 중국산이라 별로라고 하던데, 괜스레 돈쓰지 말고 그만 두시오.”

아내에게 엄하게 한마디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보약을 먹은 것이 까마득하다. 어릴 때는 어머니께서 늦둥이를 위하여 자주 해 주셨지만 그도 집안이 기울면서는 거의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아!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근무하던 30대 초반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한 동안 아픈 적이 있다. 큰 교통사고였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찰과상으로 진단이 나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바로 퇴원을 하였다. 문제는 한 3년이 진난 후였다.

어느 날 무단히 오른 쪽 다리가 붓더니 혼자서는 도저히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녀 보았지만 차도가 없어서 온 집안이 고민에 빠졌다. 지인의 소개로 용하다는 어느 한의원을 찾아갔다.

머리가 하얀 한의사께서 한 참이나 진맥을 보시더니 “젊은이! 교통사고 후유증이네, 바로 치료를 했어야 하는데 젊다고 치료를 게을리 한 것 같네. 우선 부황으로 나쁜 피를 모두 뽑아낸 후 보약으로 몸을 다스려야 할 것 같네”하시며 부황을 뜨셨다.

보름정도 통원치료를 한 후 다리는 정상으로 돌아 왔다. 문제는 보약이었다. 젊은 나 혼자 보약을 먹을 수 없어 아버지께도 보약을 지어드리려 하니 주위에서 반대가 심했다.

반대하는 이유는 ‘아버지께서 중풍으로 20여년을 앓고 계신데 보약을 드시면 돌아가실 때 고생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이나 망설였다. 형님과 누님들은 아파서 먹는 것이니 아버지 생각하지 말고 혼자 먹으라 하셨지만 결국 아내와 상의 한 후 나중에 먹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이야 아버지도 형님들도 모두 돌아 가셨으니 전과 같은 걱정은 하지 않고 보약을 먹어도 되는데 무슨 연유인지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다. 아내도 내 성격을 아는지라 더 이상 보약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제는 아들이 커다란 상자를 한 개 들고는 퇴근을 하였다. “아들아! 이게 뭐냐?”하며 아내가 얼른 상자를 받는다. “아버지 보약이에요. 유명한 한의사께 부탁해서 지었어요. 아버지께서 맥을 보시러 가면 좋은데 안 가실 것 같고… 그래서 아버지, 엄마의 건강상태를 자세히 말씀드리고 지었어요. 엄마 것은 내일 가지고 올게요. 두개는 너무 무거워서…”, “아이고, 우리아들이 효자여!” 아내의 입이 어느 사이 귀에 ‘턱’하며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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