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충북예술고 교사

불교가 오늘날의 종교 모습을 갖춘 것은 부처가 죽고 500년이 지난 뒤입니다. 오늘날 부처는 신이 돼 각 절에 불상으로 앉아서 신도들의 예배를 받죠. 부처가 남긴 말은 경전으로 정리돼 전합니다.

그런데 500년이 지난 뒤의 불교는 힌두교에 밀려서 위기에 처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종교 형태로 모습을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나타나 불교의 중흥을 이룹니다. 오늘날 절에서 예배 시작과 끝에 암송하는 ‘반야심경’은 부처가 한 말이 아니라 500년 뒤의 나가르주나라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그런데도 불교의 핵심을 잘 나타냈기에 부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아서 불경에 포함됐습니다. 웃기는 얘기죠? 하하하.

반야심경이라는 말 앞에 ‘다석사상으로 본 불교’라는 말이 붙은 것은 다석 유영모의 제자인 박영호가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다석 유영모는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세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아주 독특한 사상가입니다. 세상의 모든 성현들이 한 얘기는 똑같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예수가 한 말이나 석가가 한 말이나 노자가 한 말이나 공자가 한 말이 모두 똑같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이 남긴 말을 통해서 그것이 같은 말들의 다른 표현임을 증명하고 설명합니다. 그런 강좌를 평생토록 했습니다. 박영호는 그의 제자입니다. 그래서 스승의 관점으로 모든 경전을 번역했습니다.

모든 경전은 궁극의 깨달음에 관한 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자의 수준에 따라서 각기 뜻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장사꾼이 읽으면 돈을 버는 처세술로 읽히고, 목사님이 읽으면 사람을 인도하는 지침서로 읽히죠. 이건 무슨 얘기냐면 경전에 적힌 말을 정확히 읽으려면 그 경전의 내용을 말한 사람의 정신수준이 돼야만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만 해도 예수가 한 말을 제자들이 전한 것인데, 제자들의 수준이 예수를 못 따라가서 잘 못 전달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오류를 제대로 알려면 예수가 깨달은 그 지점까지 간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성경에 적혔다고 해 그걸 오류가 없는 진리라고 읽다가는 진짜 의미를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경전은 이렇게 뒷사람들의 관점이 스며든 방식으로 전해옵니다. 그래서 그것이 본래 말한 사람의 뜻으로 읽으려면 가장 높은 단계의 깨달음에 이르러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경전의 원전을 확정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고 많은 비밀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서지학이라는 학문이 이룬 성과죠. 그러나 서지학이라고 해도 경전의 문제는 대책이 없습니다. 어차피 성현이 한 말을 대부분 다른 사람이 들었던 기억으로 끄집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정확한 것은 그렇게 말한 사람의 수준까지 깨달은 다음에 그 글을 읽는 것일 것입니다. 박영호의 글을 읽다보면 정말 그렇게 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기준이 뚜렷합니다.

반야심경을 해석하는 그의 견해도 독특합니다. 불교는 원래 예수교처럼 절대자인 신을 찬양하는 글이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하느님이란 ‘니르바나’라고 표현됐고, 그 니르바나를 향해서 믿음을 드러내는 글이 바로 반야심경이라는 것입니다. 산스크리트어 원문을 통해서 한문 변역 본에는 빠진 내용을 찾아내어 설명하는데 정말 그렇게 보입니다. 끝부분에 생략된 문장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마음속에 있는 니르바나님께이르는 지혜의 말씀을 조용히 마친다.

저는 수많은 경전을 번역의 도움으로 읽었지만 그때마다 애매모호한 설명으로 마음만 어지러웠습니다. 그렇지만 박영호의 글을 보고나서는 더이상 다른 번역본을 찾지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불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책이 또 있습니다. ‘금강경’이죠. 이 금강경도 박영호가 해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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