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충북대학교 겸임교수

“형, 지금 막 강의가 끝났습니다. 생각보다 학생들의 질문이 많아서 좀 늦었습니다. 미안하지만 10분 후에 형한테 가야할 것 같습니다. 총장님께서 잠시 차 한 잔을 하자고 하셔서….”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전화속의 음성에 가득하다. 나는 마시던 찻잔을 다시 들고는 연구실 창밖을 바라본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어느 사이 진눈개비가 되어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때였다. 그러고 보니 벌써 40여년이 다 되어간다. 그는 시골출신답지 않게 수려한 용모에 기품이 있었고 감성이 품부한 문학 소년이었다. 밤늦도록 공부를 하다가 졸음이 서서히 우릴 감싸기 시작할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책상을 잠시 밀치고 학과 앞 벤치에 앉았다.

어느 날은 달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도 했고, 어느 날은 하얀 벚꽃이 눈처럼 내리기도 했다. 우리는 그 속에서 꿈과 희망을 이야기 했고, 때로는 현실의 아픔과 고통을 토해내기도 했다.

“형, 일전에 휘파람으로 부르던 곡 있지? 내가 좀 슬프다고 했던 곡 말이야. 그 곡 한번 불어 줘. 이렇게 달빛이 가득한 밤에는 그 곡이 어울릴 것 같은데”, “가만히 있어봐라. 무슨 곡이였지? 솔베이지의 노래였나?”, “맞아. 그 곡이야.”

나는 휘파람으로 음의 고저와 완급을 조절하면서 애달프게 휘파람을 분다. 곡이 끝나면 이번엔 그가 자작시를 읊조리며 우리들만의 낭만을 즐기곤 했다. 선후배지간으로 또 선의의 경쟁자로 대학생활을 보내던 그는 졸업 전에 꿈꾸던 행정고시에 합격하였고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부득이 꿈을 접고 농협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우린 형제처럼 생각나면 만나기도 했고, 바쁜 날이면 전화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공직을 마치고 우리가 꿈을 키우던 대학교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가 멀리서 손을 흔들며 온다.

“어서 오시게나. 여기가 바로 우리가 공부했던 그 스터디모임일세. 비록 장소는 옛날 우리가 공부하던 곳은 아니지만 ‘웅지회’란 이름으로 후배들이 공부하고 있으니 격려 좀 하시게”, “아, 형이 일전에 말했던 그 곳이구나. 여러 후배님들! 방학이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벌써 40여 년이 지났군요. 여기에 계신 류 교수님과 저는 여러분처럼 꿈과 희망을 품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의 젊었을 때의 모습을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여러분! 꿈을 향하여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증거가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둘입니다.”

그가 학생들을 격려하는 동안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꾸 흐르기 때문이다. 누가, 오늘의 이 모습을 예상했을까?

“이보게, 오늘부터 우린 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걸세. 이번엔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니 공부도 해야 하고, 또 후배들에게 우리의 꿈과 경험을 나누어 주어야 하니 더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일세. 어째든 석좌교수로 오게 됨을 축하하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