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숙 수필가

그림을 그리는 L은 내게 SNS를 통해 그의 눈으로 바라본 자연계의 색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문득 보내곤 한다. 어떤 언질도 없이 영상만 보내도 이젠 그가 무슨 뜻으로 내게 보냈는지 내심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L은 색으로 말하고 나는 그 색을 언어로 읽곤 한다. 어느덧 그녀와의 이런 식의 대화가 일상이 돼 버렸다.

마드리드에서 한국과의 8시간 시차로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L의 사진은 어김없이 경쾌한 신호음을 내며 핸드폰으로 배달됐다. 여기는 스페인이라는 내 뜬금없는 대답에 L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더군다나 미술관과 박물관 투어로 떠난 여행이니 화가로서 현장의 대가들 그림을 보고 싶은 욕망은 문외한인 나보다 몇 배는 더할 것이다.

마드리드는 아랍의 지배를 많이 받았던 스페인의 수도다. 거기다 지방자치제가 강했던 스페인은 지역 간의 갈등이 우리나라 영호남보다도 더하다고 한다. 오죽하면 가이드의 말이 그 지역의 것은 그 지역에서만 살 수 있지, 우리나라같이 대형 마트에서 편히 사듯 다른 지역 것을 살수 없다고 했다.

도시의 대부분 건물이 다 500년이 된 것들이며 식사를 위해 들어간 식당도 옛 건물을 거의 훼손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헤밍웨이가 자주 들려 차와 식사를 했다는 보틴 레스토랑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점으로 기네스북까지 오른 유명 장소이다. 그곳에서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알린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라는 소설을 구상했는지도 모른다. 첫날부터 일정은 휘모리로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체력이라면 힘든 여정이 정신없이 이어진다. 불의를 참지 않고 명예를 찾아 떠났던 돈키호테와 늙은 말 로시난테, 그리고 돈키호테를 따르던 조금은 모자란 농부 산초의 동상이 오래된 올리브나무와 함께 스페인 광장 안에 있다. 그 앞에서 일행들은 기념사진을 남기기 바쁘다.

건조한 대기의 눈을 찌르는 청명함과 파란하늘빛이 정신을 명징하게 한다. 30년 전 스페인에 클래식기타를 배우러 왔다가 그대로 눌러 앉았다는 독신의 여가이드는 일행들이 날씨가 환상이라고 극찬을 하니, 자기 또한 이 파란 하늘빛에 반해 아직까지도 고국에 귀환하지 못하고 스페인에서 떠돌고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한 이태리, 로마, 스페인 중에서 스페인은 소매치기로 가장 악명이 높다고 한다. 그녀가 어찌나 주의를 주는지 우리는 아예 여권과 경비가 든 손가방들을 가슴에 아기 품듯 하고, 그것도 모자라 스카프나 겉옷 등으로 감싸고 일행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으려 거의 뛰어 다녔다. 역시 국외로 나가봐야 내 나라가 좋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마드리드는 척박한 환경의 도시이다. 그 척박 속에도 아름다운 예술은 번성해 곳곳에 대형 성당과 미술관들이 있다. 고야의 유명한 민중봉기 ‘1808년 5월3일’ 그림이 있는 ‘프라도 미술관’과 피카소의 ‘게르니카’ 민중학살 그림이 있는 ‘소피아 미술관’도 이 도시에 있다.

붓과 펜은 어떤 무기보다도 강하다. ‘게르니카’의 소리 없는 함성을 만나러 거리의 사람들에게 한눈을 팔던 나는 다시 가이드의 뒤를 쫓아 황망히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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